이제 열심히 일만 하는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이제 열심히 일만 하는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 아침은 전 고려대 총장이셨던 염재호 교수님의 글을 공유 한다. 포스트 코로나-19(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는 20~30년 후에 주 3일 근무가 정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택근무를 하고, 집중적으로 일을 하면 주 3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AI, 로봇으로 인해 실업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하는데, 일을 나눠서 하면 현재의 고용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 북유럽에서는 주 35시간 정도 일한다. 1940년대 미국에서는 주 70시간 이상 일했다. AI와 로봇으로 인해 생산성이 높아지면 마치 기업에 법인세를 부과하듯, AI세와 로봇세를 매기면 되지 않을까?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도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이제 열심히 일만 하는 시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의미, 보람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행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만약 기본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원하는 사람은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고부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하는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힘들게 더 많이 일하면서 더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미래는 바뀌어야 한다,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이건 내 개인 이야기이다. 나는 좌/우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나는, 늘 류근 시인처럼,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교육,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자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그 모든 가치 따위에 대해서 분노하고 슬퍼할 뿐이다. 거짓과 음모와 야비와 몰상식과 기회주의에 치욕을 느낄 뿐이다." 그래 나는 인문운동가가 되었다. 그냥 맞춤법도 틀리며, 마음대로 칼을 대는 사람과는 인연을 끝낸다. 그냥 삭제한다. 류근 시인처럼, "단 일초의 차단신공으로 이승의 인연을 끝낸다."
어제는 마을 원탁회의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오래 전, 그리스 아고라 광장에서는 포스트-잇이 없어서, 마을 회의의 원칙을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원칙은 세 가지이다. (1) 자신의 의견을 잘 개진(開陳, 주장이나 사실 따위를 밝히기 위하여 의견이나 내용을 드러내어 말하거나 글로 씀)한다. (2)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한다. (3) 토론 후 합의된 사항은 받아 들인다. 이런 세 가지 원칙을 잘 지키지 않으면 소위 '도편제'로 쫓겨낸 것이 아닐까? 그 아고라 광장이 로마로 오면 '포럼'이 되었다고 한다. 우린 원탁회의란 이름으로, 포스트-잇을 활용해 이 세 원칙을 지키며 마을의 의제를 뽑는다.
어제 그런 마을 원탁회의를 마쳐 기쁘다. 그런 뜻을 함께 하며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아침이다. 나는 아침마다 전날에 있었던 5 가지 이상의 감사할 내용을 찾아 내 노트북에 적어 둔다. 그러면서 전날을, 바둑처럼, 복기(復棋)한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인문운동가의 눈에 잡힌 오늘의 한 문장을 찾아, 그걸 필사 하며 나의 영혼을 살찌운다. 가능하면, 매 번 그 내용을 공유할 생각이다. 오늘 찾은 것이다. '가능하면, 피하지 않고 살아서 울타리 낮은 이웃이 되리라.' 이런 의미에서 오늘 공유하는 시는 <안전벨트>이다. 사진은 '매력'이란 화두를 갖고 걷다가 만난 꽃 양귀비이다. 옆 동료는 어딘가로 떠났지만, 하늘하늘한 꽃잎으로 혼자 당당하게 버티고 있어 찍은 것이다.
안전벨트/조성화
나는 그대의 안전벨트가 되고 싶다.
적막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속에서
외로워 떠는 그대의 가냘픈 허리에
말할 수 없는 의지가 되고 싶다.
그대의 허리와 골반을 편안하게 해 줄
의자가 아니므로, 그대 평화로울 때
나는 환영 받지 못한다.
기인 여행의 목을 달래는
한잔의 물이 아니므로
그대 상쾌할 때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
또한 그대의 불행에서부터
나의 의미는 시작하므로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대의 불행에 동참할 준비가 기꺼이 되어있다.
외로움을 뒤흔드는 모든 불순한
섭리로부터 그대와 함께 나뒹굴
각오가 되어 있다.
나의 안전은 오직 그대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가만히 응시하지 않거나 응시할 수 없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쌓이는 적폐가 있다. 그게 바로 오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편견이 여러 의견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해답이라고 여기는 착각이다. 위대한 개인은 그런 자신을 깨우치는 공부를 통해서만 오만이라는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런 착각을 피하는 길이 자신의 제3자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나 자신도 오만한지 나를 되돌아 본다. 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겐 한 가지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것 때문에 비극적 파국을 맞이한다. 비극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은 아는데, 정작 주인공인 자신만 모른다. 그것이 오만이다. '위대한 개인'은, 남들이 보기에 소위 스펙이 좋은 인간이 아니라, 흠모하는 자신을 소유한 인간이며, 그런 인간을 위해 매일 매일 '지금-여기'에서 연습하는, 아니 훈련하는 인간이다. 스펙이 좋은 인간들은 대부분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고, 그런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안타까운 인간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력, 경제력, 권력 등을 남들과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고 자신과 자신의 식구를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그에겐 매력이 없다. 진부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매력이, 자신이 가진 보물을 남들과 함께 나눌 때, 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제에 이어 매력 이야기를 좀 더 해 본다. 매력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어떤 것이다. 그래 매력이라는 말은 아우라 혹은 카리스마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건 흔히 보는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인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들 속에 있더라도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빛나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게 오늘 아침 말하고자 하는 매력이다. '도깨비'처럼 이끌리는 힘이다. 그 매력을 가지려면, 일상의 삶에서 어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진리를 한 번은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한다면, 위험하다. 왜냐하면 진리나 상식은 보통 인간들에게는 거슬리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오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외부의 자극을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범주에 귀속시킨다고 했다. 이 '공통적인 감각'을 우리는 '상식(common sense)'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 상식이 이데올로기를 만나면, 이것마저 왜곡된다. 상식을 '교리(敎理)'로 대치시키고, 그걸 상식이며 진리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교조적인 교리에 빠져 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상식과 진리 속에서 나를 '구별된 사람'을 성장시키고 싶다면, 자신을 일상의 습관, 특히 식습관을 장악해야 한다. 배철현 선생의 <매일 묵상>을 읽고 얻은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 가지를 구별한다. (1) 마시는 음료 (2) 헤어스타일 (3) 만남을 구별한다. 첫째, 와인, 식초, 건포도가 들어간 음식과 술을 삼가한다. 두번쩨, 머리 미용을 포기하여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3) 시체가 있는 곳이나 무덤에 가지 않는다. 요즈음 말로 하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 몸에 치장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발로 가는 것을 제어하는 것이다.
배철현 선생은 이런 '구별된 아이'를 갖고 싶었던 여인의 이름이 한나(Haanah)라고 했다. 이 이름은 고대 히브리어로 '(신의) 은총', '조용', '카리스마', 더 나아가 '공짜'란 의미의 '헨'이란 단어에서 파생했다. 영어 이름 앤(Ann), 안나(Anna)는 모두 이 한나에서 파생된 이름이라 한다. 배선생이 매력은 누구나 연습을 통해 획득할 수 있기에 공짜이고, 그것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주어지기 때문에 신의 은총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나는 이제 이해했다.
한나는 그런 구별 된 아이로 키우겠다고 기도했다. 한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일상의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신에게 기도했다. 기도는, 배철현 선생의 멋진 정의에 의하면, 자신이 욕망을 신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경청하는 수고이다. 그 한나의 간절한 마음이 사무엘이라는 자식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사무엘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자이다. 사무엘은 한 밤중에 들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의 첫 예언자이자 리더가 된다. 사무엘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의 왕 사울과 다윗이 등극한다.
한나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카리스마는 객관적인 숫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개인이 지닌 매력이다. 카리스마는 다른 사람들의 충성을 자아내는 매력이다. 그러니까 카리스마나 매력은 신의 은총이다. 신의 은총이란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우연히 원하던 일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신의 은총을 느낀다. 은총의 사전적 정의는 '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은혜와 사랑'이다.
그러나 매력을 소유한 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는 데, 신의 은총을 받는 특별한 자도 아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훈련을 통해 매력을 획득하고 주변에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그 매력을 통해 슬그머니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종합하면, 매력은, 또 거기서 나오는 카리스마는 자신을 구별하여 자신의 깊은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고독한 묵상, 그 묵상을 통해 목숨을 바칠 만한 임무의 발견 그리고 그것을 대중에게 일관성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자기를 무한 신뢰하는 자이다. 다음 처럼 5 가지 절차를 말하는 것 같다.
- 자신을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가는 곳을 절제하며 구별한다.
- 자신의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서 고독하게 묵상한다.
- 그 묵상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 일을 위해 순교할 수 있는 자신의 소명, 아니 임무를 발견한다.
- 그리고 일관성 있게 말만이 아니라 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 그리고 자기를 믿고 계속 나아간다.
그러니 매일 무리 지어 사람들과 다니지 말고, 먼저 자신을 위한 별도의 공간과 시간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헌신한다. 이 구별된 시간과 공간이 고독이다. 고독이 우리를 변모 시킨다. 매력 있는 사람으로. 평범한 인간은 고독을 통해 비범한 남다른 인간으로 다시 탄생한다.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감지한다. 그리고 그 임무를 대중들에게 감동적으로 이야기 하고, 공동체의 최선을 찾아내기 위해 경청한다. 신은 공짜인 매력을 줄 사람을 찾고 있다. 오늘 오전은 조용히 주말 농장을 걸어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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