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생은 누구에게나 사적(私的)이고,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19. 11:59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생은 누구에게나 사적(私的)이고,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어제 읽은 글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창 화제일 무렵, 인도 출신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한 문장으로 샌델을 반박했다. “정의(Justice)를 정의(Definition)하기보다 가장 확실한 부정의 하나를 제거하는 게 더 정의롭다.” 주류 엘리트 경로를 밟은 샌델에게 정의에 대한 추상적 사고 실험은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가난과 질병의 폐해를 똑똑히 보아온 센에게 그런 사변적 질문은, 그저 사치로 들릴 수 있다. 나도, 마을 활동가로 참여하면서, 내 생각이 전복되는 중이다.

그러나 느리고 갑갑하고 짜증나고 화나더라도, 당장 눈 앞에 똑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다. 그러다 어느 날 되돌아 보면 좀 진보해있다. 어제가 벌써 5ㆍ18 40주년이었다. 내가 대학교 3학면 때였는데,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어쨌든 어제 여러 뉴스들을 슬쩍 둘러보면, 우리는 '진실' 쪽으로 좀 더 나아갔다. "역사적 진보란 천장을 뚫는 게 아니라, 바닥을 높이는 작업일지 모른다." 한국일보 조태성 문화부장의 멋진 문장을 어제 만났다. 그의 말을 좀 더 공유한다.

"진보란 무엇인가. 센의 목소리를 빌자면, ‘진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저러하지 않으면 진보가 아니다’라는 식의 본질적 규정을 가지고 사고실험을 하는 건 실제적 진보에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차라리 구체적인 작은 무언가를 쌓아 나가는 일에 집중하자.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만 집착하면, 남는 거라곤 그저 지상의 이 모든 거악(巨惡)을 일거에 소탕할, ‘진보 메시아의 강림’을 기원하는 일 밖에 없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종교다."

무.언가를 쌓아가는 일에 집중하자고 하면서, 나는 요즈음 바쁜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면서 나는 많은 이웃 주민들을 만난다. 그러던 중에, 그들로 부터 책에서 읽지 못한 여러 생각들을 만나면서 나는 크게 놀라기도 한다. 어제는 주말 농장을 하면서, 고라니 등 유해 동물들을 막으려고 담장을 높이 쌓기보다는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야채를 밭 주변에 만들어 주는 것이 모두 함께 사는 길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배제하고, 폐쇄적인 사고보다 포용하고, 개방적인 생각이 더 나은 길이라는 것을 사변적으로 알았는데, 실제 고라니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나는 몰랐었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어제 늦은 오후에는 어느 여름 날처럼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불었다. 그런 날 나에게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사람이 그리운 날"이 된다. "하늘 지독히 젖는 날/출렁이는 와인처럼/투명한 소주처럼 취하고 싶은/오솔길을 들면 기다린 듯/마중하는 패랭이꽃 같은/제비꽃 같은 작은 미소를 가진/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지난 일요일에 딸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한 식당 앞에서 만난 패랭이꽃이다.

사람이 그리운 날/강초선

마음 지독히 흐린 날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한 다발의 꽃처럼

목적 없이 떠난
시골 간이역에 내리면
손 흔들어 기다려 줄
한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우체통같이
내 그리운 마음
언제나 담을 수 있는
흙 내음 풀냄새가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하늘 지독히 젖는 날
출렁이는 와인처럼
투명한 소주처럼 취하고 싶은
오솔길을 들면 기다린 듯
마중하는 패랭이꽃 같은
제비꽃 같은 작은 미소를 가진
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빈 의자처럼
내 영혼의 허기 언제나 쉴 수 있는
등대 같은 섬 같은 가슴이 넉넉한 사람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사적(私的)이어야 한다. 그리고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정성스럽게 하고 싶어서 무슨 일을 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게 하고 싶은 자신을 만들 때, 그런 헌신은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간결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커왔다. 부모와 학교로부터 '해야 하는 재미가 없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신나는 일'을 교육을 통해 세뇌를 받으며 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완수해야 할 한 가지 고유한 임무가 있다.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는 고독을 통해, 그 임무를 터득하고, 아니면 스승을 통해 지도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어려서 부터 동료들과의 경쟁 속에서, 자발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일보다는, 부모와 친구들이 좋아하고, 대중이 흠모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직업을 선택하여 인생을 보낸다.

만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의도적인 일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신명(神命)도 창의성도 없다. 신명을 깊은 몰입을 통해 들리는 신의 목소리이고, 창의성은 온전한 집중을 통해 등장하는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것만이 내 관심이다. 자전거를 새로 사면 갑자기 같은 브랜드의 자전거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외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은 며칠 안에 그날 외운 단어를 길가의 간판이나 영화 등에서 마주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이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마법, 이것이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을 갖고, 아는 것을 본다. 그래 많은 경험을 통해 알아차림의 지평을 확장하고, 그리고 체험을 통해 자신의 감각의 지평을 넓혀야 세상이 크게 보인다. 우물에서 나갈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제는 흥미로운 책을 한 권 만났다. 일본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가 쓴 『슬로 이즈 뷰티풀』이라는 책이다. 다음과 같은 멋진 말에 끌렸다. "작은 꽃을 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친구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원래 인생이란 시간이 걸리는 것, 그리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남들이 조절하는 속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폭으로 느리게 가자고 독려하는 책이다. "좀 더 천천히(not so fast)", 코로나-19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성장의 한계를 깨닫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생명이란 근본적으로 목적도 방향도 지향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자신들을 특별한 생명체로 여겨 마지 사는 것에 목적이 있어야 하고 방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여러 생명들이 서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생명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은 순환할 뿐, 어느 한 곳을 지향해가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그냥 있으면서 현재를 살며 삶을 영위해 갈 뿐이다. 거기에는 목적도, 시작도 끝도 없고,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도 없다. 고라니와 공존하는 길, 나보다 더 힘든 이웃과 함께 사는 길을 찾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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