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은 오래 산다고 한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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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5월 17일)
독서가 동영상 시청보다 인지능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책 대신 유튜브 보는 습관이 들면 당장은 단순 명료하게 가공된 지식을 얻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장기적으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궁금한 주제를 짧고 흥미롭게 만든 영상만 골라 보고, 그마저 메뚜기 뛰듯 띄엄띄엄 보거나 ‘세 줄 요약’에만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단순화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영상 제작자가 주관적으로 편집한 지식에 길들여지면 흑백 논리에 잘 휘둘리고, 가짜 정보에 대한 분별력도 떨어지기 쉽다. 독서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정도 노력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준다.
얼마 전 발표된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월소득 5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독서율은 54.7%인 반면,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의 독서율은 9.8%에 그쳤다. 부유할수록 책을 많이 읽고, 가난할수록 책에서 멀어진다. 공공도서관, 서점이 부족한 지방도 책에서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독서를 순전히 개인적 행위로 간주하고 책을 시장에 맡기면 이런 불평등을 교정할 길이 없다.
책은 함께 읽으면 즐겁다. 10여년 전 동네 독서동아리에 처음 참가했을 때가 기억난다. 책을 안 읽고 온 사람일수록 말이 많았다. “책은 안 읽었지만요” 하고 시작하면, 어김없이 맥락 없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살기 힘든데 말할 기회를 만났으니 오죽했을까? 일종의 성장통이었던 듯하다. 읽고 말하는 법을, 묻고 듣는 법을 서로 배워 나갔다. 책 속 지식만 배운 게 아니라 주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법을 익혔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법, 차이를 알고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문제인 시대다. 각자도생 무한경쟁 속 한국인들은 더 외롭다. 외로운 개인들이 뭉치면 분노한 ‘진영’이 된다. 혼자서는 외롭고 뭉치면 분노하는 게 지금의 한국인이다. 책 읽기 모임, 책방, 도서관 따위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해법은 책 너머의 문제다. 책을 읽는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책 밖에도 진리가 있다.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생태계 형성이 중요한 이유다. 외롭고 약한 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다. 묻고 듣는 법을 배우면 즐겁다. 싼 책을 읽으면 즐겁지 않겠냐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같이 읽는 책이 더 즐겁지 않겠냐고.
프루스트는 독서를 "홀로 있으면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유익한 기적"이라고 규정했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허구적인 주인공이 되어, 얼마든지 다은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소설의 처음 10쪽만 읽어도 우리가 우리 주위에 구축한 요새, 나날이 살아가면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단일한 '자아'라는 허세가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정체성이 우리를 씻어주도록 허용한다. 이것이 경험의 선물이다. 하지만 그런 선물은 내가 나 자신을 침묵시키고, 열이 오른 자아를 침착하게 만들어야만 주어질 수 있다. 이 과정, 홀로 마음을 넘겨주는 일은 독자들이 오랫동안 스스로 훈련시킨 결과물이다. 그런 다음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이 필요한 공감을 길어내기 시작한다. 항상 책을 읽는 사람은 타인의 의견과 관념을 수용하는 법을 배운다.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아보고 흡수하고 좋아하는 데 익숙해진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일상생활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데 관여하는 외 영역보다 유달리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의 뇌는 그 주인공이 경험하는 것을 자신도 경험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홀로 있는 독자는 타인의 삶을 리허설 한다. 그것이 공감의 정의가 아닐까? 미국 작가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 펴냄)에 따르면, 소설 읽기는 타자에 관한 관심과 자기에 관한 관심을 결합하는 적극적 행위다. 타인의 삶을 떠올리면서 그 행위의 동기와 목표를 이해하는 연습이고, 타인의 삶, 타인의 감각, 타인의 고뇌를 자기 안에 데려오는 훈련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자기 인생이 멀리까지 확장되는 듯한 기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소설 읽기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사는지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인지적 유연성을 기르고, 어휘력과 언어 능력을 끌어올려 삶을 신선하고 세련되게 바라보고 표현하는 법을 깨달을 수 있다.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은 오래 산다고 한다. 2016년 예일대 연구팀이 50세 이상 성인 남녀 3635명을 12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 30분 이상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비독서자보다 평균수명이 23개월 더 길고, 사망률은 23% 더 낮았다 한다. 소설의 수명 연장 효과는 다른 책 독서보다 더 확연했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에 따르면, 타자에 대한 높은 공감 능력이 가져다주는 좋은 인간관계가 장수의 비결이기 때문일 것이라 헀다. 그는 좋은 이야기가 좋은 삶을 낳는다며, 소설을 읽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소설은 "있는 그대로 삶을 펼쳐내 보여줄 뿐, 무엇도 내세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가 질문을 던지고 자기 삶을 섞어 넣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소설에서 무얼 얻긴 힘들다. 반면에 절실한 질문이 있는 사람, 타자와 공명할 삶의 재료가 풍부한 사람들은 소설에서 많은 걸 얻는다. 다른 책들과 달리 소설은 능동적 독서를 통해서만 효용을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자기계발서는 주변 환경에 굴하지 않고 똑바로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굳센 마음을 길러준다. 경제경영서는 세상 보는 눈을 넓혀주고, 돈벌이나 출세에 필요한 구체적 방법을 제공한다. 인문사회서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려주고, 사회를 보는 비판적 시선을 벼려주며, 문화를 살피는 안목을 높여준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 확실히 지식과 교양이 부풀고 삶의 선연한 길잡이를 얻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처럼 명확한 지침과 권유와 명령으로 이뤄진 책이나 인문사회서처럼 엄밀한 개념과 논리로 짜인 책에 비하면, 허구 세계인 소설은 쉽게 그 효용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홀로 독서하는 경험은 현재 위기에 처해 있고, 그것이 길러내는 공감 또한 그렇다. 독자와 필자들은 플랫폼 기술을 사용한다. 작가들은 이야기를 쓰기 위한 보조자로 크라우드 소싱과 인공지능을 끌어드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고 말했다. 창작이 그렇듯 예술을 향유하는 것 역시 ‘쓸모없음’에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서 소중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결국 마음의 역할이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쉽게 버리는 문화가 사물을 넘어 사람에게 확대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인간관계나 공동체나 문제가 생기면 머리 맞대고 함께 고쳐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편을 내쳐버리려 작정한 듯하다. 물건도 사람도 쓸모와 쓸모없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그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배려이기도 할 텐데.
마지막 물음/김광규
전화기도
TV도
오디오 세트도
컴퓨터도
휴대폰도……
고장나면
고쳐서 쓰기보다
버리고
새로 사라고 합니다
그것이 더 싸다고 합니다
사람도 요즘은 이와 다를 바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의 가정도
도시도
일터도
나라도
이 세계도……그렇다면
고칠 수 없나요
버려야 하나요
하나뿐인 나 자신도
버리고
새로 살 수 있나요
한 해 동안 책을 단 한 권이라고 읽은 성인 비율(종합독서율)은 지난해 기준 43%다. 정부의 독서실태조사가 처음 시작된 1994년 이후 최저치라 한다. 30년 전 이 비율은 86%였다는 데 말이다. 조사 대상자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는 주로 다음 두 가지라 한다. 일하느라 시간이 없고, 유튜브 등 책 이외에 다른 매체를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10, 20대 사이에선 유튜브 같은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독서의 일종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독서 인구는 줄지만 유튜브로 책을 소개하는 ‘북튜브’ 채널은 인기이다. 나도 산책을 하면서, 이어폰으로 자주 듣는다. 실제로 거기서 좋은 책을 소개받아 사가지고 읽기도 한다.
왜 북튜브가 인기일까? 가성비 높은 지식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볼거리는 늘었는데 시간이 한정돼 있다면 한 권에 10시간 이상 걸리는 독서보다 10분∼1시간 이내로 핵심을 추려주는 영상에 사람들이 몰릴 법도 하다. 책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슈와 정보를 정리해주는 지식 콘텐츠가 많아 유튜브로 세상을 배운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서만큼 도움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문제는 유튜브를 볼 때와 독서를 할 때 우리 뇌는 다르게 반응한다는 거다. 동아일보의 신광영 논설위원의 주장을 직접 들어 본다.
"영상은 완제품 형태로 눈을 거쳐 뇌리에 바로 맺힌다. 뇌가 일할 필요가 없다. 반면 책은 뇌를 바쁘게 만든다. 글은 설명과 묘사, 정보를 담은 원재료일 뿐이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머릿속 지식과 경험, 정서와 뒤섞이면서 활발한 시뮬레이션이 펼쳐진다. 책을 읽다 잠시 멈추게 되는 게 이런 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영상을 100명이 보면 거의 비슷하게 기억하지만 책 한 권을 100명이 읽으면 각기 다른 100개의 스토리가 생긴다. 스쳐 흘러가는 영상과 달리 책에서 읽은 건 깊이 각인되는 이유는 나만의 맥락이 담겨 저장되기 때문이다.
책 대신 유튜브 보는 습관이 들면 당장은 단순 명료하게 가공된 지식을 얻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장기적으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궁금한 주제를 짧고 흥미롭게 만든 영상만 골라 보고, 그마저 메뚜기 뛰듯 띄엄띄엄 보거나 ‘세 줄 요약'에만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단순화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영상 제작자가 주관적으로 편집한 지식에 길들여지면 흑백 논리에 잘 휘둘리고, 가짜 정보에 대한 분별력도 떨어지기 쉽다. 독서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정도 노력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