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학위인사(學爲人師) 행위세범(行爲世範)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15. 17:01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학위인사(學爲人師) 행위세범(行爲世範)"
'배워서 남의 선생이 되고, 배운 바를 실천하여 세상의 모범이 되는 사람'

봄비가 내리는 금요일 오늘 아침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어제는 내가 애정 하는 교장 선생님께서 함께 하는 자기 학교 선생님들에게 가득한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특별 강연회를 열고 나를 초대해 주셨다. 모든 선생님들도 밝게 참여하였다. 그런데 내가 한 강의가 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생겨 먹은 게 그런데! 두서는 없었지만, 난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다. 거기서 못한 부족한 생각을 아침에 적어 본다.

나는 보통 TV를 보지 않지만, 저녁 시간에 딸과 함께 지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TV에 빠지는 때가 있다. 그 중에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그래도 흥미롭게 본다. 무슨 프로그램인지 잘 모르지만, 조셉이라는 친구와 콤비로 퀴즈를 내고 마치면 현금을 주는 프로이다. 물론 현금, 즉 화폐를 주고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외 두 사회자가 진행하며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마음에 들곤 했다.

지난 수요일 밤에는 우연히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이명학 교수가 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공자의 애제자를 극찬했던 말을, 그 장면은 다시 기억하게 해주었다. 그 말은, 오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새겨볼 가치가 있다 생각한다. "학위인사(學爲人師) 행위세범(行爲世範)" '학문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어야 하고, 행실은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로 해석된다. 공자가 사랑했던 제자 안회의 삶을 묘사한 말이다. 북경사범대학의 교훈이기도 하다. 내가 나온 사범대학의 '사범(師範)'의 어원이다. 좀 더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배워서 남의 선생이 되고, 배운 바를 실천하여 세상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나도 실천하고 싶다. 교육자는 학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행실에 있어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다음은 이명학 교수님이 늘 하시는 이야기라 한다. "인성(人間性)을 갖추지 못한 교사가 나가면 지식 전달자이지 선생이 아니다. 말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직업은 선생님밖에 없다. 말로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학생에게 신뢰를 얻어야 되고, 언행이 진실이 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이 교수님의 인생철학도 "가진 것을 나눠 주는 삶을 살고 싶다"라 한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스승의 말을 맞이하여, 현인(賢人)들이 말했던 스승으로 귀감이 될 만한 문장들을 다시 써 보며 각오를 다지는 아침이 되고 싶다. 선생이 선생이기를 포기하면 학생의 미래도 이 나라의 희망도 없다. 선생이 바로 서면 교육도 바로 선다고 나는 믿는다. "교사가 지닌 능력의 비밀은 인간을 변모 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성균관대 이명학 교수가 한 말도 다시 공유하고 싶다. "한마디 말과 한 가지 행동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직업은 선생님밖에 없다." 더 무서운 말은 이 거다 '서툰 의사는 한 번에 한 사람을 해치지만, 서툰 교사는 한 번에 100 여 명씩 해친다.' '최고의 교사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한다.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 시켜 준다'는 뜻이다. 이 말은『예기』"학기"편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가 없다. 또한 지극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왜 좋은 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배워본 이후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 수 있으며, 가르친 이후에는 비로소 어려움을 알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안 다음에는 능히 스스로 반성하고, 어려움을 안 다음에는 능히 스스로 장(長)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제, 특강에서 만난 젊고 예쁜 선생님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그리고 함께 공유한다. 그래 사진은 카네이션으로 대신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미국의 웹디자이너로서 교사인 아내를 위해, 선생님에 관한 일련의 시를 쓰는 케빈 윌리엄 허프의 것이다. 이 시를 또한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친다.

스승의 시/케빈 윌리엄 허프

선생님은
학생들 마음에 색깔을 칠하고 생각의 길잡이가 되고
학생들과 함께 성취하고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길을 밝혀 젊은이들을 인도하며
지식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일깨웁니다.
당신이 가르치고 미소 지을 때마다
우리의 미래는 밝아집니다.
시인, 철학자, 왕의 탄생은 선생님과
그가 가르치는 지혜로부터 시작하니까요.

나는 배철현 선생의 아침 글이 내 스승이다. 오늘 아침 안젠가 그의 <매일 묵상>을 읽은 후에 적어 두었던 것을 다시 공유한다. 인간은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잘 모른다. 그래 임무를 깨워줄 학교를 만든다. 내 아침 글쓰기도 일종의 학교이다. 인생이란 학교의 특징은 '무작위'다. 내가 예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무작위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정한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목표를 위해 매일 훈련하며 정진하는 사람에게, 일상의 난제들은 오히려 그들을 더 고결하고 숭고하게 만드는 스승들이 된다.

“누가 지혜로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일상의 난제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배울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무료로 가르쳐 준다. 그들의 가르침은, 나의 생각을 넓혀주고 부드럽게 만든다. 나의 말과 행동을 정교하게 다듬어 사람과 사물에 친절하게 응대하게 유도한다. 인생이란 학교(學校)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이해(理解)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선, 심지어 원수의 시선으로 그 난제에 대한 나의 반응을 관찰하는 냉정(冷靜)이다. 나는 난제들을 해결(解決)할 수 없지만, 해소(解消)할 수 있다. 낮은 곳에 있는 물이 높은 곳으로 흘러갈 수 없고, 선악을 구별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지혜를 가르칠 수 없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태권도를 시작한 초보자가 사범을 훈련시킬 수 없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 특히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을 것같은 인생의 난제들이 나를 고양시킬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의 카톡에서 얻은 생각이다.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은 인생삼락을 이렇게 꼽았다.

▪  문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 문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는 것
▪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 일독(一讀)
▪ 이호색(二好色)
▪ 삼음주(三飮酒) 세가지 즐거움이라 했다.

▪ 책 읽고 글 쓰며, 항상 배우는 선비정신
▪ 사랑하는 이와의 변함없는 애정
▪  벗과 함께 어울리는 풍류를 말한 것이다.

『논어』 맨 앞에 나오는 삼락(三樂)은?

▪ 배우고 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 가
▪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 가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의 삼락(三樂)은,

▪ 건강(健康) - 마음대로 움직이고, 아픈 데가 없어야 한다.
▪ 가화(家和) - 집안이 평안하고, 가족이 건강하다.
▪ 보람(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 다른 말로 하면 만족감이나 자부심) - 할 일이 있고, 봉사하며 보람을 얻는다.

오늘날 우리의 삼락(三樂)을 물질문명의 시대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서는 앞의 세 현인이 말하는 정신문명을 회복하여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외, 소개 시켜 준 다산(茶山) 정약용(鄭若鏞)은 『유수종사기(游水鐘寺記)』에서 세가지 즐거움을 이렇게 꼽았다. 이건 내 가치관과 배치된다.

▪ 어렸을 때 뛰놀던 곳에  어른이 되어 오는 것
▪ 가난하고 궁색할 때 지나던 곳을 출세해 오는 것
▪ 나 혼자 외롭게 찾던 곳을 마음 맞는 좋은 벗들과 어울려 오는 것 (진사가 된 21세 때의 글)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시시하게 살다가, 흔적 없이 조용히 때가 되면 떠나고 싶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추사 김정희의 '인생 삼락'이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죽는 날까지 그걸 나의 즐거움으로 알고, 흔들리지 않을 테다. 책 읽고 글 쓰며, 항상 배우는 선비정신, 사랑하는 이와의 변함없는 애정과 우정, 벗과 함께 어울리는 풍류.

풍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에서 나온다.

안빈낙도,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산 속으로 들어가서, 비록 가난하더라도 걱정 하나 없이 맘 편히 지내는 일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말은 '낙도(樂道)'이다. '안빈(安貧)'에만 초점을 맞추어 가볍게 사용하면, 삶 속에서 안빈낙도의 정신을 생산하지 못한다. 안빈낙도라는 말은 위에서 말했던 안회를 평하는 다음 문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안회야, 너 참 대단하구나! 한 바구니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끼니를 때우고, 누추한 거리에서 구차하게 지내는 것을 딴 사람 같으면 우울해하고 아주 힘들어 할 터인데, 너는 그렇게 살면서도 자신의 즐거워하는 바를 달리하지 않으니 정말 대단하구나!"

가난함을 즐기는 태도보다, 가난함 속에서도 마음이 변하여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지 않고, 그 가난함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이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부적인 것에 탓을 하거나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중심을 굳건하게 잡은 후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즐거워하다는 악(樂)을 번역한 말이다. 이를 우리 말로 하면, 풍류(風流)이다. 공자 시대의 이 말은 그냥 감각적인 쾌락으로 마음이 들뜬 상태를 말하는 것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각적 쾌락은 절재 없이 탐닉(淫)으로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악은 음을 거부한다. 풍류는 음란을 거부한다. 탐닉으로 빠지지 않을 정도의 고양되고 절제된 즐거움이 악(樂)이고, 풍류이다. 악이불음(樂而不淫)이다. 당시에는 사회를 유지하고, 교화를 완성하도록 만들어진 체계를 예악(禮樂) 체계라고 했다. 사회에서 도(道)를 실현하는 장치이다. 안회가 즐거워하던 바를 달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의 높이에서 실현되는 삶을 추구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것을 짧게 말해, 안빈낙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안빈낙도는 가난해서 할 수 없이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가난으로 다른 이를 위해 절약하고 덜 먹고, 덜 소비하며 풍류를 즐기는 일이다. 여기서 풍류는 즐거워 하며, 감각적 쾌락을 절제하여 도의 수준, 고양되고 절제된 즐거움에 이르러 그 악(樂), 다시 말해 풍류(風流)를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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