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는 것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14. 17:56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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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5월 10일)

우리가 흔히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데, 그리스어 성경에서 보면 '십자가를 진다'는 단어는 '바스타제인'의 번역어이다. 이 단어가 지닌 첫 번째 의미는 '귀중한 것을 품고 가다'이다. 구체적으로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갈 때 이 동사를 쓴다. <<삶이 고통으로 휘청거릴 때>>에서 송봉모 신부님은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는 것이다. 안고 가는 것은 단순히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다.

물론 지고 가든, 안고 가든 짐은 짐이다. 그런 짐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바스타제인'의 느낌으로 어깨나 등으로 짊어졌던 짐들을 풀어 그것들을 품 안에 안는 자세로 바꾸어 보는 거다. 짐의 무게에 짓눌려 등이 자꾸만 점점 더 굽어지는 초라한 모습으로 늙어가기보다는,  그 짐- 화나게 하는 것, 지치게 하는 것 -들을 눈 맞추고 자장가를 부르며 마음으로 아기를 안 듯 살포시 안아 보는 거다. 어쩌면 그 길이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지는 것이 아니라, 품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 <십자가>를 보면, 그에게 십자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으로 받아들인다. 십자가는 희생이 아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이다. 십자가가 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꽃 피우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십자가는 영광이다. 그 사실을 알면, 십자가가 자기에게 주어졌음을 감사할 줄 안다는 거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목숨을 바쳐 소중하게 그 십자가를 품에 안고 살아가는 거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녹 9:23)라 말하지만, 십자가는 어쩔 수 없이 마지 못해 등에 지고 힘겹게 질질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품에 안고 가는 거다. 자신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며 기뻐하는 마음으로 안고 가는 거다.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꽃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인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을 소중히 간직한 채 자기 인생을 완성하는 거다.

십자가(十字架)/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루카 복음 9장 23절에서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우선 나를 버리려고 애쓴다. 원하는 것을 줄이고, 가진 것을 내려 놓으려 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짐을 늘 품으려고 한다.

<<이솝우화>>(현대지성)의 141 이야기가 "말과 당나귀"이다. "어떤 사람에게 말과 당나귀가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는 도중에 당나귀가 말에게 말했다. "내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면, 자네도 내 짐을 조금 덜어서 저주 게나." 하지만 말은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당나귀는 기진맥진해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주인은 말에게 모든 짐을 지게 하고, 거기에 죽은 당나귀에게서 벗겨낸 가죽까지 얹었다. 말은 울먹이며 외쳤다. "정말 한심하게 되었구나. 작은 짐도 지지 않으려고 하다 이제는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거기에 가죽까지 지게 되었으니, 도대체 이 모든 고생이란 말인가?" 그리스인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도와서 협력하면 둘 다 목숨을 구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다음 이야기도 기억난다. "'맨발의 전도자’ 사두(인도의 종교 수행자)선다 싱(Sundar Singh)이 히말라야 산길을 걷다 어떤 이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도중에 눈 위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여기에 있으면 이 사람은 죽어요. 함께 업고 갑시다.” 선다 싱의 제안에 동행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안타깝지만 이 사람을 데려가면 우리도 살기 힘들어요.” 동행자는 그냥 가버렸다. 선다 싱은 하는 수 없이 노인을 등에 업었다. 그는 얼마쯤 가다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먼저 떠난 동행자였다. 선다 싱은 죽을힘을 다해 눈보라 속을 걸었다. 온 힘을 다해 걷다 보니 등에선 땀이 났다. 두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매서운 추위도 견뎌낼 수 있었다. 결국 선다 싱과 노인은 무사히 살아남았고, 혼자 살겠다고 떠난 사람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훗날 어떤 이가 선다 싱에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가 언제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짐이 가벼워지기를 바라지만 그때가 위험하다는 게 선다 싱의 일침이다. 먼 바다를 떠나는 선박도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배의 밑바닥에 물을 가득 채운다.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 채우는 바닥짐(밸러스트)이다. 우리 인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식이나 남편이 속을 썩일 때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나와 등을 맞댄 그 사람 덕분에 내가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존재가 삶의 항해를 지켜주는 바닥짐일 수 있다.

나에게 이 바닥짐은 예수가 말씀하신 '십자가를 품으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의 짐이 무겁지 않다. 더 나아가,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할 때"라 생각하니, 다른 이의 짐도 지고 싶고,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