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홀로 있을 줄 아는 사람이 라야 타인과 세계와의 관계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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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30일)
오늘이 4월 마지막 날이다. 봄날이 가면서 우울하다. 그리고 요즈음 내 심정은 좀 '잠시 좀 혼자 있고 싶다'는 거다. 그동안 내 옷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내 상상에 따라, 제2의 인생을 만들어 갔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이 그걸 내 뜻대로는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래 이젠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생을 마감할까 고민중이다. 그러던 중, 마이클 해리스의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이미 읽은 책인데, 다시 정독 하려 한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영어로 <<solitude>>이다. 우리 말로 하면 '고독'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홀로 있음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가 한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다. 고독은 인간의 본질이다. 본래 고독하게 살고 고독하게 죽는다. 그러나 사실 고독 속으로 들어가면 고독의 한가운데서 채워지는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 도시에서 바쁘게 밀려다니며 일상을 보내는 사람은 이해 못 할 이야기이다. 고독의 시간은 자신과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 습관적으로 고독한 시간에 자기 자신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반드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한자로 고독(孤獨)은 외로울 고(孤)와 홀로 독(獨)자가 결합된 단어이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은 다르다. 고독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거다. 고독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불안해지는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최고의 시간이 된다. 그러니까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슬픔이지만, 고독은 함께 있어도 느낄 수 있는 '혼자 있음'의 자각이다. 외로움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고독 속에서는 희망이 올라온다. 희망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다. 고독의 시간을 누리며, 마침내 희망으로 나아간다. 고독은 만족감을, 외로움은 목마름으로 이어진다.
마이클 해리스의 책에서 말하는 요지는 "제대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 삶의 가장 섬세한 기술 가운 하나"라는 거다. 무리에서 벗어나, 연결에서 해제되어, 내면의 자아를 회복하는 방법을 탐구하자는 거다. 제대로 홀로 있을 줄 아는 사람이 라야 타인과 세계와의 관계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으로 생명체로서 내면적 일관성, 즉 '영혼과 분리되지 않은' 온전성이 강화될수록 모든 생명체와의 교감 속에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홀로 있음을 느낀 자만이, 고립된 신체의 단절감을 느낀 자만이 누군가의 신체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축복으로 느낄 수 있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홀로 있음은 함께하는 세상의 바탕이 된다는 거다.
삶에는 리듬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리듬을 통제할 수도 있다. 이건 단순히 축복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선택한 리듬이 아니라 자신에게 강요된 리듬에 따라 살아가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치는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게 된다는 거다. 그것은 홀로 있음의 상실이다. 특히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으면 세상과 연결된 상태가 계속된다. 홀로 있는 사람도 사실상 군중 속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저자에 의하면, 사람이 한시도 홀로 있지 못하면 잃는 것이 많아진다면서, '홀로 있음'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 기운을 북돋아준다.
- 기억을 강화하며 인식을 날카롭게 다듬어주고 창조성을 북돋운다.
- 우리를 더 차분하게 만들며 주의력을 더 깊게 해주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
- 무엇보다도 순응하라는 압박감을 덜어준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 우리 삶에서 열정, 향유, 성취감의 가장 깊은 연원을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을 우리에게 준다.
-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주어 자기 자신이 되게 한다.
- 우리가 다시 모여 군중이 되었을 때 더 나은 동료가 되게 해준다.
이런 '홀로 있음'의 기술은 터득하기는 어렵고 망가뜨리기는 쉽다. 사회의 많은 유혹들이 우리들에게 홀로 있을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하고, 최악의 경우 시간 낭비라고 꼬드긴다. 우리는 이런 힘들에 저항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시장과 이에 부응하는 언론 미디어이다. 그래 가급적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가짜 뉴스에 속곤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SNS는 점점 우리를 소비로써 증명하도록 부추긴다. 그래 개인의 사유, 즉 생각이 중요한 이유이다. 저항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지금 우리가 대항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자본주의 사회이다. 지금 일상의 여러 요소들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체제이고, 그 자체가 바로 권위적인 압박이다. 대안이라면? 주류 사회에서 고독하게 돌아서는 것이다. 고독해 진다면, 혼자 놀 줄 안다면, 주류 사회의 쏠림을 거부할 수 있다. 그리고 소비형식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려면 고독을 통하여 내면의 힘을 단련하여야 한다. 우린 지금 시끄러운 일상에서 좀 이탈한 고독이 필요한 때이고, 많은 이가 고독하게 앉아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의 힘을 길러내 어야 우리 사회가 성숙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떼 지어서 다닌다. 카페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독은 스스로를 홀로 두며 스스로가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자각을 이루는 자리이다.
오늘부터 읽을 이 책은 '홀로 있음'의 가치를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무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저항하게 만드는 박차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저항하기 위해서는 주류 사회에서 고독하게 돌아서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만 소설가 장쉰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주류 사회로부터 떠나 고독의 힘을 단련시킨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자기 자신과 함께함으로써 자신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용기와 힘을 기르려면, 바깥세상이 계속 변하고 정보가 넘쳐나도 평온하게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고독을 두려워 할 필요 없다. 두려움은 외로움과 황량함을 부른다. 지금 하고자 하는 바로 그 일을 하면 된다. 그 길이,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사는 것이 아닐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이문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