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관한 이야기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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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26일)
오늘 아침에 잡은 화두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르트르는 '삶을 B와 D사이에 C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B는 Birth라는 태어남을 의미하고, D는 Death라는 죽음을 의미한다.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사이에 C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C는 Choice라는 선택을 말한다. 여기서 무엇을 선택한다는 말은 무엇을 버린다는 말이다. 선택은, 깊은 생각을 통해, 그 과정과 결과를 상상하고 예측하여, 지금을 대하는 정교하고 엄격한 삶의 태도이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굳이 알지 않아도 되고, 쓸데 없고 거추장스러운 정보들이 핸드폰을 통해 나의 사생활이 쉴 새 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하루를 경계(警戒)하지 않으면, 그런 뉴스들로 나의 생각이 오염되고, 나의 갈 길을 방해받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여기에서 나에게 최선인 것을 알아내는 능력이 안목(眼目)이라면, 그 혜안을 감히 실행하려는 행위가 용기(勇氣)이다. 우리는, 이 안목과 용기를 가지고, 선택을 하여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선택을 연속하며 이러한 선택의 총합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생의 주체성과 자유의지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갓 1세가 된 인간은 돌잡이를 하며 선택하는 생의 시작을 축하 받는다. 사소하게는 점심 메뉴부터 인생을 바꿀 만한 기로에서까지 삶은 매순간 선택을 종용한다. 우리는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품은 채 선택의 날을 맞는다. 필시 전보다 나은 선택이기를 원한다. 선택의 책임 또한 본인에게 있다. 선택의 특징은 정답이 없으며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다. 이 점은 위안이 되기도 폭력이 되기도 한다. 선택 자체가 삶이기에 선택에 길들여 있으면서도 선택이 어려운 이유다.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견디고 감당하는 일이다. 가령 좌골신경통, 손목터널증후군은 세상 많은 작가가 걸작을 얻는 대신 치른 선택의 대가다. 런 웨이를 걷는 수퍼 모델의 멋진 워킹 역시 가혹한 운동과 다이어트의 결과다. 선택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느 하나를 원하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선택을 싫어한다. “삶이 너무 안락하면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너무 고단하면 여력이 없다”는 정희진의 말처럼, 무엇 하나 녹록지 않은 복잡한 삶 속에서 선택은 점점 고달프고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좋은 선택을 하는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가령 운동할 것인가, 집에서 쉴 것인가라는 고민이 들기도 전에, 헬스장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어떻겠는가? 이것이 바로 ‘습관의 힘’이다. 훌륭한 가수나 운동선수들은 휴식과 연습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위대한 작가들의 더 위대한 일은 노벨상이 아니라 그들이 매일 읽고 썼다는 사실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하는 습관이, 결국 할 수 없던 것을 가능케 만든다. 매일 몇 시간이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다면 그는 점점 그 일을 더 잘하게 된다. 그리고 신은 이런 사람들을 선택하고 힘껏 돕는다.
그리고 정리 컨설턴트가 말하는 정리의 1원칙은 '하나를 사면 하나는 버리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요즈음 필요한 건 ‘탐색’이 아닌 ‘정착’일지 모른다. 막상 우리가 열광하고 사랑하는 건 선택 가능성이 무한정 열려 있는 세상이 아니다. 매번 바뀌는 가게가 아니라, 60년째 영업 중인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들이며, 잠재적 연인이 가득한 데이트 앱이 아니라 50년 헌신한 노부부 이야기인 것이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 기쁨을 극대화하는 건 역설적으로 절제다.
그리고 “나만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포모 증후군’ (FOMO·FEAR OF MISSING OUT)의 반대 개념이 ‘조모’(JOMO·JOY OF MISSING OUT)이다. '조모'는 선택하지 않아서 놓칠까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서 생기는 즐거움을 뜻한다. 가령 결혼하면 잠재적 연인을 찾을 기회는 사라진다. 하지만 기회를 포기한 대가로 안정감이 찾아온다.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포모’ 증후군이 미래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일한 해독제는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삶이 ‘유한하다’는 명확한 인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선택’보다 ‘선택해야 할 시기에 선택을 회피’해서 불행해지기도 한다. 선택에 너무 신중하면 높은 매몰 비용 때문에 오히려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 역설 때문에 ‘그냥’은 최선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남들이 뭐라든 그냥 선택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선택이 성공은 아니어도, 실패는 종종 알을 깨고 또 다른 세계로 나가는 길이 된다. 삶은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선택의 과정이다.
그러나 문제적인 것은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두려움과 고백하지 않아서 생기는 미련 중 어느 쪽이 더 후회가 될 까라는 점이다. 심리학에선 행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후회가 더 오래 간다고 밝힌다. 후회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도한 것은 성공이든 실패든 선택의 결과가 명확하기 때문에 비교적 감정 소비가 적다. 무엇보다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은 “만약 그때 내가”라는 가정법이 끝없이 과거를 소환한다. 후회는 쉽게 회한으로 바뀐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언제 사라지고 가벼워질까? 감정이 물이라면 컵 안의 물을 다른 곳에 따라 부으면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감정은 콸콸 흘러 넘쳤을 때라야 조금씩 비워진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를 좋아해 눈물이 난다면 비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고, 사랑이 사람을 자라게 하는 방식이다. 나의 경우는 선택을 너무 절제한다. 그리고 너무 '지금' 그리고 '그냥'
에 집중하고 싶다. 오늘 사진도 한 무더기의 불두화(佛頭花) 중에서 이 한 개를 선택한 것이다. 왜? '그냥'.
그냥이라는 말/조동례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별 변화없이
그 모양 그대로라는 뜻
마음만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난처할때
그냥 했어요 라고 하면
다 포함하는 말
사람으로 치면 변명하지 않고
허풍 떨지 않아도 그냥 통하는 사람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자유다 속박이다 경계를 지우는 말
그냥 살아요 그냥 좋아요
산에 그냥 오르듯이
물이 그냥 흐르듯이
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바스 카스트의 <<선택의 조건>>이라는 책 속에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누구를 사귈 것인가?'라는 선택에 관해 말하자면, 연애를 하면 할수록, 상대를 바꾸면 바꿀수록 만족도는 더 낮아진다고 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이런 현상을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원하는 경험이 아닐 때, 사람들이 재빨리 다른 경험을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맘에 안 드는 렌터카는 되돌려주고, 형편없는 음식이 나온 레스토랑에서 나와 버리고, 말 많은 SNS 친구는 바로 차단하는 식이다.
<<선택의 조건>>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을 바꿀 기회가 없는 경우에만 기존 관점을 바꾼다. 이 말은 당장 이혼할 수 없기에 배우자에게서 장점과 고마움을 찾아내고, 바로 교체할 수 없기에 낡은 아파트를 수리하고 아끼게 되며, 되돌릴 수 없기에 밤마다 울고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아이에게서 사랑스러움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도망가거나 취소할 수도 없을 때, 우리는 드디어 관점을 바꾸고 지금 일어난 일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한 차선만 있는 도로에서 차가 밀린다면 짜증이 나긴 하겠지만 후회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두 차선이 있는데 유독 내 차선만 막힌다면? 선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선택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는 게 꼭 좋은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내가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종종 뷔페 식당의 다양한 음식보다 전문점에서 끓여 낸 칼국수 한 그릇에 더 만족스러워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