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halleluja,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8년 전 오늘 글이에요.

'참나'를 찾는 여행
할렐루야 halleluja,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뜻이다. 알렐루야와 같은 말.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나도 다시 마음을 바꾸어 증오보다는 사랑을, 대립보다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날을 다시 또 시작하자.
예수께서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시어 고통과 죽음의 절망 속에 있는 우리들을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하셨다. 예수의 부활은 희망이다.그분의 부활로 우리는 구원되었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레드 코헨의 <할렐루야>를 듣고 싶다.
임마뉴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란 말이다.
오늘은 부활주일이다.
모처럼 딸과 계족산을 봄 꽃 놀이 겸 걷기 운동을 갔다. 산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맑은 오페라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가요에 짜증이 나곤 했다. 뽕작거림이 천박해 보였고, 사랑타령도 식상했고, 진정성이 없다고 느껴졌었는데, 계족산은 한 소주회사가 정례화한 클레식 작은 음악회가 신선했다.
그런데 언론은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등록일과 세월호 3주년과 겹쳐, 올해의 부활절 소식들이 밀렸다.
"하느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다. 이러한 사랑의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는 길은 '예수가 하느님이다'라고 끊임없이 고백하고 갖가지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지혜로 사람들과 뭇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다."를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다시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 완성됩니다.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요한 1서: 12-16)
그리고 이 지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아마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님이다.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이 아닐까?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을 구원하려 하지 않았잖아. 그들은 남들을 위해서 죽으려고 했고, 삶 전체를 걸고 복음을 알림으로써 남을 구원하려고 했기에 구원받은 거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특권과 독점의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 더 살고 싶어한다.
서로 고마운 관계임을 알고 사랑을 실천해야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가 된다.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며.
예수의 부활절은 우리에게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각자 스스로 변화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터닝 포인트를 주는 날이다. 평화는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상태"로 부단히 노력해야 이루어진다. 봄처럼, 얼어붙은 땅을 뚫고 어린 새 생명이 싹을 틔웠듯이, 희망의 싹을 갖고 새로 뽑힐 대통령과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부활은 희망이다. 우리도 과거의 잘못된 낡은 악습과 어두운 절망은 모두 무덤 속에 묻어두고 희망 가득한 새 삶으로 이 봄과 함께 부활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부활의 의미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