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활절은 각자 스스로 변화하여 삶을 살아가도록 터닝 포인트를 주는 날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하나
오늘 아침은 부활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부활 미사가 없는 부활절을 맞는 첫 기독교 역사상 처음일 듯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우디와 예멘의 전쟁 마저 휴전 시킬 정도이다. 총칼의 위협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협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 미국과 유럽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아침인가 보다. 우리는 다소 전염이 누그러진 듯 하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Happy Easter!" "Joyeuses Paques!", "축 부활", "찬미 예수님, 부활을 축하합니다." 그래 오늘은 시 대신에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와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를 공유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볼 수 있다.
1. 할렐루야(Hallelujah) -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 중에서 https://youtu.be/dYWO7bgRKDE
1. Leonard Cohen - Hallelujah (Live In London) https://youtu.be/YrLk4vdY28Q
예수는 당시 절대왕권이 있던 세상에서 '모든 이는 하느님의 자식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주장하시다, 결국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는 부활했다. 이는 예수의 몸의 부활보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말했던 예수의 정신이 부활한 것이다. 하느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다. 이러한 사랑의 하느님에게 기꺼이 가는 길은 '예수가 하느님이시다'라고 고백하고, 갖가지 예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지혜로 사람들과 뭇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다시 기억해야 한다.
할렐루야(천주교에서는 알렐루야)는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말이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요한 1서 4장 12절에서 17절을 오늘 아침 공유한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함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 완성됩니다.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서 가 아니라, 그를 사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속에 매력(魅力)이 있다. 아마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이시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소크라테스도 그 속에 넣는다.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의 의미가 아닐까?
예수의 부활절은 각자 스스로 변화하여 삶을 살아가도록 터닝 포인트를 주는 날이다. 그래 부활은 희망이다. 우리도 과거의 잘못된 낡은 악습과 어두운 절망은 모두 무덤에 묻어주고 희망 가득한 새 삶으로 이 봄과 함께 부활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부활의 의미로 사는 것이다. 그 길은, 봄처럼, 얼어붙은 땅을 뚫고 어린 생명이 싹을 띄우듯이 노력을 해야 한다.
이직도 우리 사회는 특권과 독점의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 더 살고 싶어한다. 이 번주에 우리는 중요한 선거가 있다. 선거를 통해, 그런 사람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고마운 관계임을 알고 사랑을 실천하는 성숙하고 건강한 시화가 된다. 예수의 부활의 의미를 기억하며 선거를 해야 한다.
지난 해 부활절 아침의 글쓰기를 봤더니, 류시화 시인의 '낫싱 스페셜(nothing special)!' 이야기를 공유했었다. 이 말을 프랑스어로 하면, '빠 드 스페씨알(Pas de special)!이다. 한국말로 하면, '큰일 아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가 된다. 코로나-19로 다들 불안해 하고 우울한 일상들을 보내고 있는 올해 더 위로를 해주는 말이다. 이건 류시화 시인의 이 말에 대한 해석이다. "단지 하나의 사선일 뿐인 데도 우리의 마음은 그 하나를 전체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살면서 겪는 문제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괴물이 되어 더 중요한 것에 멀어지게 된다. 그걸 그렇게 큰일로 만들지 말고, 문제와 화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문제는 작아지고 우리는 커진다." 실제로 우리 자신은 문제보다 더 큰 존재이다. 그러니 살아남아야 한다. 알렐루야 ~~
몇 가지 '알뜰신잡'이다. 할렐루야는 히브리어이고, 알렐루야는 라틴식 발음이다. 개신교에서는 할렐루야라 하고, 천주교에서는 알렐루야라고 한다. 뜻은 같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또는 "주를 찬미하라'이다. 부활절은 날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 날은 3월 25일에서 4월 22일 사이로 날짜는 유동적이다. 춘분이 지난 후 첫 보름달이 뜨는 그 주의 일요일이다.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교회의 종들이 로마에서 각자의 하늘로 날아오다가 초콜릿으로 만든 계란을 떨어뜨렸고, 이것을 아이들이 정원에서 주웠다고 한다. 계란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끝으로 부활절을 라틴어로는 파스카(Pascha), 프랑스어로는 빠크(Paques), 영어로는 이스터(Easter)라 한다.
할렐루야/레너드 코헨
나는 들었지요, 어떤 비밀스러운 선율
다윗이 연주한 그 선율이 주님을 기쁘게 했다고.
그러나 당신은 음악엔 관심 없지요, 그렇지요?
그 선율은 이렇게 흘러요.
4도 화음에, 5도 화음, 단조로 내리고, 장조로 올리고
낙심한 왕은 그렇게 할렐루야를 작곡했지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당신의 신앙은 두터웠으나, 그걸 증명해야만 했어요.
목욕하는 그 여인의 모습을 지붕 위에서 보았고
달빛 안에 있는 그의 아름다움이 당신을 뒤덮었어요.
그 여인은 식탁 의자에 당신을 묶고
당신의 왕좌를 깨뜨리고, 당신의 머리를 잘랐지요
그리고는 당신의 입술에서 할렐루야를 끌어냈지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마도[그대여], 나는 그전에 이곳에 있었던 적이 있어요.
이 방을 알아요. 이 바닥을 걸었었죠.
당신을 알기 전에 혼자 살았어요.
대리석 아치에 걸린 당신의 깃발을 본 적이 있어요.
사랑은 승리의 행진은 아니에요.
그것은 시리고 일그러진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래서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당신이 내게 알려줄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 당신은 내게 전혀 보여주질 않아요, 그렇죠?
그때를 기억하죠. 내가 당신 안으로 들어갔을 때
거룩한 비둘기도 들어왔어요.
우리가 나눈 모든 숨결은 할렐루야였어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마도 높은 곳에는 하느님이 계실 테고
사랑에서 내가 배운 모든 것은
당신을 유혹하려는 누군가를 쏘는 방법
그것은 당신이 밤에 들을 수 있는 울음소리가 아니에요.
그것은 빛에 비춘 어떤 사람도 아니에요.
그것은 시리고 일그러진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당신은 내가 그 이름을 헛되이 부른다고 말하죠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이름을.
설령 그랬더라도, 정말이지, 그게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죠?
모든 말씀 속에는 타오르는 빛이 있어요
당신이 들은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거룩한 것이든 일그러진 할렐루야든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는 온 힘을 다했어요. 그리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느낄 수 없었기에, 만져보려 했어요.
나는 진실을 말했고, 당신을 속이러 온 것이 아니에요.
그 모든 것이 잘못된다 해도
나는 노래의 왕 앞에 서겠어요.
다른 말은 담지 않고, 오직 할렐루야만 부르며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Leonard Cohen (1934 ~ ) “Hallelujah” (1984)/번역: 주낙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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