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가면 어떻게 될까?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7. 10:07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주역>> 동의하지?/박수소리

조민의 입학이 취소라면?
김건희씨는 학력위조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왜 다른 가요?
틀리다고 하고 싶지는 안 해요.
잘 모를 뿐이에요.
이 놈의 세상을.
나는 왜 공부한지 모르겠 어요.

딥을 찾다가 류근 시인의 담벼락을 만났어요.
갠적으로는 답은 내가 포기한 교수들이 문제라고 생각되네요.
난 포교예요.'
교수를 포기했던 사람.

"사사오입 개헌 때에도 3선개헌 때에도 유신개헌 때에도 교수들이 활약했습니다.
4대강 국토 유린 때에도 교수들은 그 두꺼운 얼굴을 떼로 내밀었습니다.
친일파 독재 찬양 국정 교과서 음모에도 교수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작금에 숨죽이며 눈치 살피고 있다가 정권 바뀌자마자 가장 먼저 본색을 드러내는 것도 교수들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졸업하는 순간 대부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만 가르치는 것으로 세계적 정평이 나 있습니다. 거기서 월급받는 교수들에게만 쓸모가 있는 게 우리나라 대학입니다.
조민 씨 입학취소 원투 펀치로 기회주의 속성을 제대로 펄럭인 대학들 보니 헛웃음만 납니다.
익히 그럴 줄 알았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그 일관된 수준, 존경스럽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학자가 되면 그 시대 인간의 가치가 시궁창에 처박히게 됩니다.
날마다 부끄럽습니다.
시바." (류근 시인)

난 이 마지막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난 욕은 안 해요.
교수를 하려고 했거든요.
프랑스에서 유학을 너무 많이 했거든요.
ㅈ 도.

이 말은 안 하면 못 잘 겉아.
난 행복해.
아무 자리고 안 맡아 거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신영복 교수는 자신의 책,  <<담론>>에서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된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일을 그르친다”고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자기 자신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 ‘70%의 자리’를 권한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주장을 '그릇 론'이라 한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30 정도의 여유, 30 정도의 여백이 창조의 공간이 된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가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부족한 30을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거짓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 난다.” 또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자리와 관련해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그 자리의 권능을 자기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주역>>은 효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경우를 ‘득위’라 하고 잘못된 자리에 가 있는 경우를 ‘실위’라고 한다. 득위는 아름답지만 실위는 위태롭다.
<<주역>>의 핵심은 관계론이다.
'길흉화복'의 근원은 잘못된 자리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내가 있는 '자리', 즉 '난 누구, 여긴 어디'를 묵상하며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직위(職位)'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 속에서 나의 위치까지 확장되는 용어이다. 한문으로 하면 '위(位)'이다.

<<주역>>에 따르면, 제자리를 찾는 것을 득위(得位), 그렇지 못한 것을 '실위(失位)'라 했다.
득위는 만사형통이지만, 실위는 만사불행의 근원이다.
잘못된 자리는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한다.

그래 난 불행하지 않다.
<<주역>> 동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