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4. 2. 09:56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최근 우리들의 상황을 보면, 코로나 19로 삶이 엉망이다. 특히 '신천지'라는 이상한 종교집단의 단체 감염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 소위 '선진국'들이 코로나18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노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구미권이 근대로 먼저 나아갔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크게 약화시켜온 구미 국가들은 무조건 선망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선진국’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신종 바이러스와 고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바람에 제때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귀중한 시간을 잃었다. 특히 만성적인 예산부족 등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공공의료는 상당한 부실함을 드러냈다. 미국의 영리 목적의 민영병원 위주 의료시스템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미국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선진국’ 일본의 경우, 검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지금까지 드러난 확진자 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고 <시엔엔>(CNN)과 같은 주요 서방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판이다. 상당수 전문가들도 조직적 은폐 의혹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의료시스템에 대한 부족한 예산지원이나 바이러스에 대응하지 못하는 영리의료, 재난 규모의 은폐와 축소 의혹 등을 과연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 욕망의 문제이다. 그래 오늘 아침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치료법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본다. 배철현 교수의 글을 참고했다.

에피쿠로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저술하는 데 바쳤다고 한다. 그는 300권 이상의 책을 남겼다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책은 없고, 제자들이 스승의 어록을 남긴 노트가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을 뿐이다. 기원후 79년 베스비오산이 화산 폭발할 때 폼베이 근처 헤라쿨라네움에 화산재가 떨어져 그 곳에 보관됐던 문헌이 발굴되었다. 그 문헌에 따르면, 행복한 삶을 위해 욕망을 치료하기 위한 '네 단계 치료법'이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이는 에피쿠로스가 경고한 불행의 원인, 일상의 쾌락이 아닌 불쾌함의 원인인 두려움과 허영이란 병을 고치기 위한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한 사람을 위한, 우리들의 욕망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흥미롭다.

(1)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2)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3)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
(4) 최악의 상황은 견딜 만하다.

에피쿠로스는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무서운 것으로 '두려움', '허영' 그리고 절제가 없는 욕망'으로 꼽았다. 그의 말을 인용한다. "불행은 두려움이나 허영 그리고 절제 없는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만일 사람이 감정들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관조하는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다."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이 사라지는 상태로 진입하는 단계를 우리는 '관조'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를 인간 삶의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럼 네 가지 치료법 중 첫 번째인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에피쿠로스는 친구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1220.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최근 우리들의 상황을 보면, 코로나 19로 삶이 엉망이다. 특히 '신천지'라는 이상한 종교집단의 단체 감염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 소위 '선진국'들이 코로나18에 속절없이 당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노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구미권이 근대로 먼저 나아갔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크게 약화시켜온 구미 국가들은 무조건 선망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선진국’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신종 바이러스와 고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바람에 제때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귀중한 시간을 잃었다. 특히 만성적인 예산부족 등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공공의료는 상당한 부실함을 드러냈다. 미국의 영리 목적의 민영병원 위주 의료시스템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미국 스스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선진국’ 일본의 경우, 검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지금까지 드러난 확진자 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고 <시엔엔>(CNN)과 같은 주요 서방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판이다. 상당수 전문가들도 조직적 은폐 의혹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의료시스템에 대한 부족한 예산지원이나 바이러스에 대응하지 못하는 영리의료, 재난 규모의 은폐와 축소 의혹 등을 과연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 욕망의 문제이다. 그래 오늘 아침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치료법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본다. 배철현 교수의 글을 참고했다.

에피쿠로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저술하는 데 바쳤다고 한다. 그는 300권 이상의 책을 남겼다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책은 없고, 제자들이 스승의 어록을 남긴 노트가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을 뿐이다. 기원후 79년 베스비오산이 화산 폭발할 때 폼베이 근처 헤라쿨라네움에 화산재가 떨어져 그 곳에 보관됐던 문헌이 발굴되었다. 그 문헌에 따르면, 행복한 삶을 위해 욕망을 치료하기 위한 '네 단계 치료법'이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이는 에피쿠로스가 경고한 불행의 원인, 일상의 쾌락이 아닌 불쾌함의 원인인 두려움과 허영이란 병을 고치기 위한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한 사람을 위한, 우리들의 욕망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법이라는 것이다. 흥미롭다.

(1)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2)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3)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
(4) 최악의 상황은 견딜 만하다.

에피쿠로스는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무서운 것으로 '두려움', '허영' 그리고 절제가 없는 욕망'으로 꼽았다. 그의 말을 인용한다. "불행은 두려움이나 허영 그리고 절제 없는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만일 사람이 감정들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관조하는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다."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이 사라지는 상태로 진입하는 단계를 우리는 '관조'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를 인간 삶의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럼 네 가지 치료법 중 첫 번째인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에피쿠로스는 친구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신들이 있다. 그러나 신들에 관한 많은 말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잘못한 가정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이 없다는 무신론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말 그대로 신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신이 우리를 심판하는 자로 무서워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자비로운 신으로 받아들이자는 말로 이해한다.

그런데, 에피쿠로스 추종자들은 고대사회 최초의 무신론자로 불렸다. 그들은 세상이 '원자와 허공'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원자와 사물을 허공에서 돌아다닌다. 세상에 신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신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 생각은 당시 아테네인들에게는 파격적이었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이상적인 삶은 허상으로 만든 신에 대한 제거에서 시작한다. 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에 신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에피쿠로스에게 있어서 삶의 철학은 경험에 근거한다. 신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인간의 삶에 개입 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신을 향한 기도를 이렇게 하였다고 한다. "만일 신이 인간의 기도를 들어준다면 모든 인간은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을 이용하는 인간의 욕망을 꾸짖었다.

우리는 여기서 신과 종교 그리고 교회의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사람들은 종교를 '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종교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예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예수는 자신을 따라 다니던 유대인들에게 삶에 대한 성찰과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당신 옆에 낯선 자가 바로 신이다." 여기서 신은 누구인가? 배철현 교수의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우리에게 예수란 무엇인지, 신은 무엇인지 답한다. 저자에 의하면, 예수는 혁명적인 인물이다. 신은 하늘에 있는 존재라 믿는 시대 속에서, 자신이 신이라 말했고, 모두가 신이라 말해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당신 옆에 있는 낯선 자가 바로 신이죠. 낯선 자를 사랑할 수 있느냐가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어로 '아가페'는 상대방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는 단순하고 혁명적인 가르침이 인류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는 종교가 폭력의 진앙이 된 것은 근본주의 탓이라고 한다. "자기가 믿는 것만 옳다고 믿는 건 오만이자 무식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 가르침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해듯이 삶에 대한 경외가 신이다." 신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경외하는 것이다,. 공경하면서 두려워 하는 것이다. "IS와 알카에다는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이다. 종교는 오히려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자기 삶을 깊이 보려는 의지이다. 나를 변혁시키려는 하나의 활력소이다." 그래서 종교의 가치는 유효하다. 이번 코로나 19가 사이비 종교를 가려주었다. 글이 너무 길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신에 대한 문제는 '덧붙임'으로 돌렸다. 그 글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강요 받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강의가 취소되어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우리 사회와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중이다. 지금은 에피쿠로스가 말한 "사 치료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견딜 만하다". 오늘은 첫 번째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에 대한 이야기 였다. 신을 믿지 마라는 것은 아니다. 신은  우리를 겁박하는 두려움의 심판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분이다. 오늘 아침 사진을 보면 안다. 모든 가지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에너지를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

너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최종석

봄 햇살 같다고 썼다가 지운다
목련꽃 같다고 썼다가 지운다
이슬비 같다고, 라일락 향기 같다고 썼다가
모두 지운다

뭐라고 써야 할까

내 안의 어둠 한 번에 쫓아내 버린
나를 자꾸만 착해지게 만드는
내 메마른 영혼을 적셔 주고
나를 끊임없이 미소 짓게 하는 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천사라고 쓸까
끝까지 지켜 주고 싶은 순수라고 쓸까
처음으로 갖게 된 종교?
아니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행복?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다시 쓰고
그렇게 며칠 밤을 꼬박 새우다가
번개처럼 번쩍, 천둥처럼 우르르 쾅쾅
순식간에 떠오른 생각

나는 마침내 힘주어 이렇게 쓴다
너는 신들이 모여서 지어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詩
라고!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최종석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신들이 있다. 그러나 신들에 관한 많은 말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잘못한 가정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이 없다는 무신론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말 그대로 신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신이 우리를 심판하는 자로 무서워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자비로운 신으로 받아들이자는 말로 이해한다.

그런데, 에피쿠로스 추종자들은 고대사회 최초의 무신론자로 불렸다. 그들은 세상이 '원자와 허공'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원자와 사물을 허공에서 돌아다닌다. 세상에 신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신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 생각은 당시 아테네인들에게는 파격적이었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이상적인 삶은 허상으로 만든 신에 대한 제거에서 시작한다. 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에 신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에피쿠로스에게 있어서 삶의 철학은 경험에 근거한다. 신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인간의 삶에 개입 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신을 향한 기도를 이렇게 하였다고 한다. "만일 신이 인간의 기도를 들어준다면 모든 인간은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을 이용하는 인간의 욕망을 꾸짖었다.

우리는 여기서 신과 종교 그리고 교회의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사람들은 종교를 '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종교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예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예수는 자신을 따라 다니던 유대인들에게 삶에 대한 성찰과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당신 옆에 낯선 자가 바로 신이다." 여기서 신은 누구인가? 배철현 교수의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우리에게 예수란 무엇인지, 신은 무엇인지 답한다. 저자에 의하면, 예수는 혁명적인 인물이다. 신은 하늘에 있는 존재라 믿는 시대 속에서, 자신이 신이라 말했고, 모두가 신이라 말해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당신 옆에 있는 낯선 자가 바로 신이죠. 낯선 자를 사랑할 수 있느냐가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어로 '아가페'는 상대방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신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는 단순하고 혁명적인 가르침이 인류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는 종교가 폭력의 진앙이 된 것은 근본주의 탓이라고 한다. "자기가 믿는 것만 옳다고 믿는 건 오만이자 무식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 가르침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해듯이 삶에 대한 경외가 신이다." 신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경외하는 것이다,. 공경하면서 두려워 하는 것이다. "IS와 알카에다는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이다. 종교는 오히려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자기 삶을 깊이 보려는 의지이다. 나를 변혁시키려는 하나의 활력소이다." 그래서 종교의 가치는 유효하다. 이번 코로나 19가 사이비 종교를 가려주었다. 글이 너무 길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신에 대한 문제는 '덧붙임'으로 돌렸다. 그 글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강요 받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강의가 취소되어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우리 사회와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중이다. 지금은 에피쿠로스가 말한 "사 치료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선한 것은 얻기 쉬운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견딜 만하다". 오늘은 첫 번째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에 대한 이야기 였다. 신을 믿지 마라는 것은 아니다. 신은  우리를 겁박하는 두려움의 심판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분이다. 오늘 아침 사진을 보면 안다. 모든 가지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에너지를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

너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최종석

봄 햇살 같다고 썼다가 지운다
목련꽃 같다고 썼다가 지운다
이슬비 같다고, 라일락 향기 같다고 썼다가
모두 지운다

뭐라고 써야 할까

내 안의 어둠 한 번에 쫓아내 버린
나를 자꾸만 착해지게 만드는
내 메마른 영혼을 적셔 주고
나를 끊임없이 미소 짓게 하는 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천사라고 쓸까
끝까지 지켜 주고 싶은 순수라고 쓸까
처음으로 갖게 된 종교?
아니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의 행복?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다시 쓰고
그렇게 며칠 밤을 꼬박 새우다가
번개처럼 번쩍, 천둥처럼 우르르 쾅쾅
순식간에 떠오른 생각

나는 마침내 힘주어 이렇게 쓴다
너는 신들이 모여서 지어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詩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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