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기쁜 일이 생겼다고 크게 웃지 말고, 힘든 일이 생겼다고 크게 슬퍼하지 말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3. 29. 10:42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28일)

어제 공유한 노자의 <<도덕경>> 제13장을 나는 고통과 환난과 아픔을 극복하려 하지 말고, 그것을 내 몸과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말로 읽었다. 그리고 음과 양이 하나로부터 나왔 듯이 총과 욕도 하나로부터 나왔다. 음이 있으니, 양이 있는것과 같이 총이 있으니  욕됨도 있는 것이고 이것 들로부터 내 몸이 형성되는 것이니 둘 다 놀라운 것이다. 큰 근심은 또한 큰 즐거움의 근원이고, 이 둘의 작용으로 인해 내 몸이 이루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큰 근심을 귀하게 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는 거다.

우리의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많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예기치 않게 일어나기도 하고, 간혹 우연한 행운에 기뻐 우쭐하기도 하며 뜻밖의 불행한 일로 좌절하여 슬퍼하기도 한다. 때로는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화복은 항상 변화하여 예측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삶에서 화복을 겪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원문 없이 제13장을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

사랑을 받으나 모욕을 받으나 늘 놀란 것 같이 하라.
큰 걱정을 귀하게 여기기를 내 몸을 귀하게 여기듯 하라.
사랑을 받으나 모욕을 받으나 늘 놀란 것 같이 하란 말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사랑은 항상 욕이 되기 마련이니 그것을 얻어도 놀란 것처럼 할 것이고,
그것을 잃어도 놀란 것처럼 할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총욕약경"이라 한다.
사랑을 받으나 모욕을 받으나 늘 놀란 것 같이 하란 말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나에게 큰 걱정이 있는 까닭은 나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몸이 없는데 이르르면 나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천하를 귀하게 여기는 자에겐 정녕코 천하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자기 몸을 아끼는 것처럼 천하를 아끼는 자에겐 정녕코 천하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정밀 독해 할 부분은 "何謂貴大患若身(하위귀대환약신) 吾所以有大患者(오소이유대환자) 爲吾有身(위오유신) 及吾無身(급오무신) 吾有何患(오유하환)"이다. 이것은 '큰 환란을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긴다 함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내가 큰 환란을 당하는 것은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다면, 내게 무슨 환란이 있겠는가?"란 뜻이다.

도올은, 이 문장을 통해, 노자가 '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몸'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았다. 존재가 곧 몸이고, 몸이 곧 존재라는 거다. 몸은 나의 존재 전체라는 거다.  심(心, 마음)과 신(身, 몸)의 문제는 나의 블로그로 옮긴다. 그러면서 도올은 노자가 '신(身, 몸)을 중시하는 태도, 인간의 모든 문제상황이 이 '신' 하나에서 나온다는 노자의 주장은 고대동아시아 사유의 원형(prototype)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무신(無身)"을 "만약 내가 몸이 없다면'이란 뜻보다 더 적극적으로 본다면 '나의 몸이 나의 존재상황에 하등의 대립적 요소를 품지 않는다'로 볼 수도 있다는 거다. 도올의 해석에 따르면, 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자유'의 느낌을 말할 수도 있지만, 노자에게 있어서 '몸'은 불교나 신유학이나 기독교가 말하는, 죄악이나 욕망의 근원 혹은 초극 되어야 할 대자적 존재가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완성되어야 할 하는 생성의 과제 상황이라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총욕약경", 총의 상황이든, 욕의 상황이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놀란 듯이 하라는 것은 그 몸의 조화, 그 질서를 깨뜨리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13장의 마지막 문장, "故貴以身爲天下(고귀이신위천하) 若可寄天下(약가기천하) 愛以身爲天下(애이신위천하) 若可託天下(약가탁천하)"이 잘 이해된다. 그러므로 천하를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가히 천하를 맡길 수 있고, 천하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천하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총욕약경"의 지혜를 이른 자, 즉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천하를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 비로소 천하를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야기를 쉽게 말하면, 기쁜 일이 생겼다고 크게 웃지 말고, 힘든 일이 생겼다고 크게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슬픔은 애당초 인생의 계약서에 적혀 있다. 그러니 사는 것은 견디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 없는 거다. 그러니 내 몸뚱이를 잘 지키며 견디는 거다. 오늘 공유하는 시인은 슬픔을 팔아 꽃밭 하나 사고 싶다고 했다. 슬픔을 살 사람은 없으니, 슬픔이 팔릴 리가 없다는 걸 시인도 잘 알 것이다. 슬픔을 팔겠다는 건 슬픔과 함께 하겠다는 다른 표현이 아닐까? 이때의 슬픔은 처음의 비탄이 아니라, 고운 꽃으로 승화된 슬픔이다. 꽃밭에는 아픔이 배인 꽃들이 핀다. 슬픔과 아픔 마저 긍정하는 시인의 고운 마음씨가 읽힌다. 인생의 그늘에도 늘 꽃은 핀다.

이 슬픔을 팔아서/이정우

이 슬픔을 팔아서
조그만 꽃밭 하날 살까
이 슬픔을 팔면
작은 꽃밭 하날 살 수 있을까

이 슬픔 대신에
꽃밭이나 하나 갖게 되면
키 작은 채송화는 가장자리에
그 뒤쪽엔 해맑은 수국을 심어야지

샛노랗고 하얀 채송화
파아랗고 자줏빛 도는 수국
그 꽃들은 마음이 아파서
바람소리 어느 먼 하늘을 닮았지

나는 이 슬픔을 팔아서
자그만 꽃밭 하날 살꺼야
저 혼자 꽃밭이나 바라보면서
가만히 노래하며 살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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