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2. 10. 09:12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은 공지영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부,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관계보다 나를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다"를 읽고, 내 마음에 꽂히는 문장들을 공유하며 사유를 해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공지영 작가는 제일 먼저, 사람하고 헤어지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이지만, 섬진강 근처로 이사를 한 후, 잘 발효된 된장처럼 묵은 우정은 좋은 것이지만, 일찌감치 곰팡이가 피었다면 내다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가치가 없는 곳에 내 정성을 쏟아 붓는 것은 친구가 없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안 것은 최근 일이라 말했다. 나도 가끔씩 관계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 작가는 "한 번 뿐인 내 인생 이렇게 살다가 가기 싫다 하고 마음 먹은 이후, 나 자신을 사랑하고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겠다 마음 먹은 이후, 내게 또 하나의 변화가 찾아 왔는데,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과 우정을 맺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사적 관계도 끊어내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전화나 문자도 받지 않았다 한다. 나도 몇 년 전부터 그렇게 살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기도 시간이 없고 바쁘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과는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 공지영 작가처럼 나 자신을 폄하하는 말들과 괴로워하며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공지영 작가처럼, 내가 관계를 끊기 위해, 코드를 빼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 "듣기 싫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 너를 위해 이러는 거야"라며 말을 하는 사람,
- "저기 내가 좀 심한 말을 해야 할 텐데 괜찮겠나?"라며 말을 하는 사람
- "초면에 실례지만" 하며 말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과 단절이 어려우면, 공 작가는 거리두기 하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그들과의 관계보다 더 '귀한 나'를 소중하게 지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소중하지 않은데 내가 맺는 관계가 소중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자신의 단점을 못 고칠까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점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 자기 단점을 몰라서 문제가 되었으며, 말로 해서 고칠 건데 말을 못 들어 못 고친 단점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장점에 대해 들어야 한다. 사람의 단점은 없어지지도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장점을 자꾸 칭찬해주는 거다. 그러면 그 장점이 점점 더 커져 단점은 분명 있기는 하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거다.

내가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을 물리치기만 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물으면, 공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나는 인간이 진정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 때 이 세상이 좋아진다고 믿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을 자제해야 할 때 나가지 않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것은 진정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공 작가는 의미 없는 사교, 의미 없는 대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대화들이 정말 피곤하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다. 왁자지껄 모여야 우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속물이라 생각한다.

지금-여기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어제는 바꿀 수 없고,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여기의 문제를 잊으면 안 된다. 절대 바꿀 수 없는 것, 절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야 말로 시간의 낭비이고, 공허한 일이다. "네가 방 안에서 혼자 가만히 머물지 못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위대한 스승들은 말했다. 자기 스스로와 함께 있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와 함께 있어도 외롭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잘 지내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도 내 삶의 철학은, 공자처럼, 서(恕)이다. 공자는 평생 간직할 만한 한 가지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제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恕(서)”라고 외쳤다. 恕는 如(같을 여)와 心(마음 심)이 합쳐진 글자이다. 나의 마음이 상대와 같아지는 게 ‘서’라는 것이다. 공감은 그의 처지에서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아픈 이에게 베푸는 최고의 위안은 그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다.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보다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에게 더 따스함을 느낀다. 그것이 공감의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시는 이것으로 공유한다. 사진은 어제 산책 길에서 찍은 것이다. 사람은 다 때가 있듯이, 자연 그 때를 잊지 않고 있다.

누군가 슬퍼할 때/김현옥

친구의 눈에 눈물이 흐를 때
함께 울게 하소서
친구의 가슴이 고통으로 멍들 때
연민을 느끼며 그를 껴안을 수 있게 하소서
가난한 이웃의 어려움을 들을 때
모르는 척하지 않고 그의 궁핍함을 함께 걱정하고
그의 불안한 삶의 고뇌를 나누며
주머니를 털어 그와 나눌 수 있는 진실함을 주소서

무언가 사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거나
남들이 해결하리라 미루지 않고
저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함께 올바른 길로 나가기 위해
기꺼이 끼어들게 하소서

주님의 자녀인 제가 말만 앞선다는 소리를 들어
당신께 누가 되지 않도록
살아 있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다시 공지영의 책으로 되돌아온다. 그녀의 책에서 만난 이런 주장이 내 머리에 남았다. 영혼, 육체, 머리 중에서 제일 바보가 머리이고, 그 다음이 육체이며 영혼이야 말로 가장 많은 것을 안다. 설사 우리가 그 친구와 하루 종일 웃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 삶을 나누는 멋진 대화를 했다 해도 우리의 영혼은 안다. 육체는 그 영혼의 텅 빔을 알아차려 육체 답게 허기의 신호를 보낸다. 작가는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을 소개했다. 만일 어떤 친구와 만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음식이 더 먹고 싶어 지고 약간 스스로가 싫어 지면서 내가 하루 종일 뭐 했지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친구를 만나지 마라. 우리의 육체가 우리 영혼의 상태를 안다.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대는 절대 내 곁에 두지 않는다. 역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상대를 존중할 수 없다면 따로 관계를 돈독히 하지 않는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계속 무시당하고 천대받으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시간과 에너지 낭비이다.  친구가 아무리 잘나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내가 필요한 순간에 아무 도움도 안 준다. 내게 아무리 그 사람이 좋아도 그 사람이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관계엔 어떤 가치도 없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아는가 문제이다. 저기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더 민감해 지는 것이다. 그냥 무감각해 지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소중히 여기는 일은 무엇이 더 중요하고 지켜야 하는 가치가 있는 일인지 순위를 매기는 일이다. 용기는 두려운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는 것을 아는 일과 같다. 일의 순위가 중요하다. 작가는 내가 평소에 주목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행기를 타면, 이런 매뉴얼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기내에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천장에서 자동으로 산소마스크가 내려옵니다. 노약자나 어린이를 동반하신 분은 먼저 자신이 그 마스크를 쓰시고 후에 노약자나 어린이에게 마스크를 씌워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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