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돈이란 신을 경배하면 할수록, 우리는 사물의 차이, 혹은 사물의 다양성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2. 10. 08:59

1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오늘 아침은 ‘돈’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돈이 ‘신’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시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악속>을 어제 조조영화로 보게 된 것 때문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나오는데,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어린 나이에 죽은 고 황유미 노동자의 나이와 비슷한 처녀 세 명이 눈시울을 붉히고 여전히 앉아 있는 모습과 마주치자 그만 나는 큰 소리로 오열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 때문에 눈물과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잃고 사는 나의 맨얼굴을, 나의 마음을 만났기에 수치스럽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내가 너무 서러웠습니다.

이 영화는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딸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실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한 아버지의  10년에 걸친 투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평범한 가족에게 찾아온 뜻밖의 비극을 이들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 영화를 생각하다가, 나는 최승호 시인이 ‘돈’이 종교가 된 사회를 고발한 <자동판매기>란 시를 기억해 냈습니다.

자동판매기/최승호

오렌지주스를 마신다는 게
커피가 쏟아지는 버튼을 눌러버렸다
습관이 무서움이다

무서운 습관이 나를 끌고 다닌다
최면술사 같은 습관이
몽유병자 같은 나를
습관 또 습관의 안개나라로 끌고 다닌다

정신좀 차려야지
고정관념으로 굳어가는 머리의
자욱한 안개를 걷으며
자, 차린다. 이제 나는 뜻밖의 커피를 마시며

돈을 넣으면 눈에 불을 켜고 작동하는
자동판매기를
賣春婦(매춘부)라 불러도 되겠다
黃金(황금)교회라 불러도 되겠다
이 자동판매기의 돈을 긁는 포주는 누구일까 만약
그대가 돈의 권능(권능)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대는 돈만 넣으면 된다
그러면 賣淫(매음)의 자동판매기가
한 컵의 사카린 같은 쾌락을 주고
十字架(십자가)를 세운 자동판매기는
神(신)의 오렌지주스를 줄 것인가

이 시는 돈이 종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는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고 영속적인 행복을 약속합니다. 돈도 우리에게 종교처럼 우리에게 행복 혹은 안식을 느끼게 합니다. 돈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꿈꾸며 행복하게 해줍니다. 예컨대 지갑에 돈 만원이 있을 때와 백만 원이 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보시면 압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돈으로 무엇을 사고 난 다음, 돈이 줄어들면, 우리는 신의 버림을 받은 것처럼 자신이 점점 초라해지는 것을 느끼지요.

이 문제를 가장 잘 지적하고 있는 사람이 짐멜입니다. 그의 책 <짐멜의 문화론>에서, 그는 “돈이란 신을 경배하면 할수록, 우리는 사물의 차이, 혹은 사물의 다양성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돈의 광신도는 그것이 주는 안정과 평온의 감정에 매료되어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타인들이나 주변의 사물에 시선을 던지려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같은 영화를 보지 않으려 합니다. 최승호 시인도 둔감해져 오렌지주스와 커피를 혼동했던 것입니다. 돈의 상징인 자동판매기 앞에서 시인은 사물의 비교 불가능성에 둔감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라는 신이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준 무서운 자신의 습관을 냉정한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돈은 민감한, 감수성이 살아있는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둔감은 죽은 이의 몫이고, 살아있는 사람의 몫은 ‘민감함’입니다. 민감하면, 우리는 그만큼 더 아픕니다. 그렇지만 아프면 살아있다는 것이니 위로가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