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란 자기를 줄이고 버리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에 공유하는 시는 기도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이 시를 소개한 장석남 시인은 이런 덧붙임을 했다. "기도란 무엇을 구하는 형식인가? 기도란 자기를 줄이고 버리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여기 아름다운 기도의 형식이 있으니 고요히 서 있는 저 나무의 자세와, 초록을 다해 일어서는 풀잎들, 겸허히 숨죽인 바위들의 자세가 그것이다. 다만 침묵에 귀 기울여 스스로 고요해지는 그것이다. 그리하면 깊고 편안한 저녁별의 세계에 도달하리라."
기도가 절로 나오는 시절이다. 신종인지 변종인지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크게 위축당하지 않은 일상이지만, 암울한 뉴스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럴 때일 수록 노자가 주장하는 삶의 방식과 세계관이 답이 아닌가 하며, 그의 글을 다시 읽게 된다. '소국과민(小國寡民)', '나라를 적게 하고 주민의 수를 적게 한다'는 말이다. 초 연결이니, 글로벌이니 하면서 너무 키우고 채운 결과, 좋은 점도 있지만, 요즈음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좋은' 대책이 없다. 그 '잘난 척"하는 구글은 뭐 하는가? 네이버는 뭐 하는가? 바이러스 앞에서.
노자 『도덕경』 마지막 장인 제 80장을 한문 없이 내 방식대로 번역하여 본다.
"나라를 작게 하고, 주민의 수를 적게 한다.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잘 갖추지만, 굳이 쓸 일이 없게 삶을 경영한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죽음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게 한다.
배도 있고 수레도 있으나 탈 일이 별로 없게 하고,
갑옷과 무기가 있지만 싸움이 없게 하며,
지식이 권위와 권력으로 작용하도록 펼칠 일이 없는 사람을 영위한다.
자기가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달고, 맛있다고 여기고,
자기가 입은 옷이 가장 아름다우며,
자기가 사는 집이 제일 편안하고,
자기가 누리는 문화를 가장 즐겁게 여기는 삶을 산다.
이웃나라는 서로 바라볼 수 있고
서로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주민들이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
전면적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을 되돌아 볼 시간이다.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는 장소에 가길 꺼려 하는 '강요 받는' 삶 속에서 숙고할 많은 시간들이 주어졌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혼자 아니면 소수가 모여 놀며 시간을 보내는 삶에 익숙하게 짜여져 있었기에, 바이러스가 크게 내 일상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이제 우리는 "제 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입술 내밀고 일어서는 초록들처럼", "숨을 죽인 바위들처럼",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다.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시간이다. 매년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예측해 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올해 '멀티 페르소나', '업글인간', '오팔세대', '페어 플레이어', '팬슈머' 등이 인기를 끌 것으로 예측했다. '멀티 페르소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매체 등에 따라 매 순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다층적 자아를, '업글인간'은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이들, '오팔세대'는 5060 신노년층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멀티 패르소나", "업글 인간", "오팔세대" 등이 되려면, 우리의 일상을 스킵(skip)하지 않고, 과정의 기쁨을 향유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요구된다. 정여울 평론가한테 배웠다. "생의 디테일을 한 순간도 남김없이 한올 한올 즐길 줄 아는 것, 지루한 부분도, 서글프고 힘겨운 부분도 남김없이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내게는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길, 더 풍요로운 나 자신의 뿌리와 가까워지는 길이었다." 문명의 편리를 가성비 최고의 효율성으로 심취하느라,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법, 땅의 소리를 듣는 법, 따스한 차 한 모금, 향기 좋은 와인 한 잔을 즐기는 법을 잃었다. 그래 그 법들을 되찾으라고, 우리 주변에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것은 아닐까?
저녁별처럼/문정희
기도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홀로 서서
제자리 지키는 나무들처럼
기도는 땅의 소리를 듣는 것이라
저기 흙 속에
입술 내밀고 일어서는 초록들처럼
땅에다
이마를 겸허히 묻고
숨을 죽인 바위들처럼
기도는
간절한 발걸음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깊고 편안한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저녁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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