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버티기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 갑자기 프랑스 소설가 까뮈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내가 우연히 이기철 시인의 시 <까뮈>를 만났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까뮈의 사진은 구글에 얻어왔다. 사람들은 내가 담배를 물고 안경을 벗으면, 젊은 시절의 나와 까뮈가 닮았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모자로 내 정체성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는 사라졌다.
내가 프랑스 문학에 입문해서 그를 알게 된 것은 다음 두 개의 사건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나는 대학교 3학년 때 벌어진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때문에 학교가 폐교되어 집에서 뒹굴뒹굴해야 했을 때이다. 바로 위의 형이 불어교육과를 다녔기 때문에 집에 소설가 알베르 까뮈의 소설들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프랑스로 유학 갈 당시 한국 문단은 실존주의가 유행이었다. 덩사 까뮈는 사르트르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절망하는 세계인들에게 실존이 본잘보다 앞선다'는 주장을 해 많은 위로를 주었다. 그러던 중 까뮈는 『이방인』이라는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탄다. 그러나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빠세 꽁보제(복합과거)라는 시제를 사용했다는 것이 상식 밖이었다. 소설 작법상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소설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시지프스의 신화』라는 책을 출간했다.
까뮈는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이라고 마하였다. 그 예로 '시지프스의 형벌'로 들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가장 현명하지만, 동시에 가장 교활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잔머리의 대가'이며, '고자질의 일인자'이다.
시지프스는 아폴론의 소를 훔친 헤르메스의 범행을 아폴론에 알려주었고,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신하여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자 인간인 주제에 신들의 일에 자꾸 끼어들어 골탕 먹이는 시지프스에게 화가 난 제우스는 죽은 자들의 세계인 지하세계로 잡혀가게 한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저승의 왕 하데스까지 속이고 다시 세상으로 도망쳐 나온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붙잡혀 저승으로 끌려온다.
신들은 고약한 시지프스를 위해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 그것이 높은 산 위로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이었다. 문제는 그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으면, 바로 그 순간 제 무게로 다시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시지프스는 다시 내려와 처음부터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새로 하여야 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영원히 계속하여 그 일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하늘 없는 공간, 깊이 없는 시간'과 싸우는 형벌이었다.
까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신들이 생각한 것은 일리 있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현대인들의 권태롭고 전망 없는 일상이 시지프스의 무용하고 희망 없는 형벌과 같다고 썼다. 그러면서 까뮈는 우리에게 '사막에서 버티기'를 제안하였다. 우리들이 겪는 삶의 고단함과 무의미함을 극복하는 방법을 '버티기'라고 했다. '버틴다는 것'은 그곳을 벗어나지 않고 꿋꿋이 견딘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인이 시를 쓰는 일도 견디는 일이라고 했다. 연초에 큰 일정 없이 조용한 생활을 하며, 겨울나무처럼 "견디고" 있다. 이재무 시인의 <겨울나무로 서서>의 일부를 옮겨 본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잎들을 떨군다./여름날 생의 자랑이었던/가지의 꽃들아 잎들아/잠시 안녕/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축복을 위해/지금은 작별을 해야 할 때/살다 보면 삶이란/값진 하나를 위해 열을 바쳐야 할 때가 온다.
까뮈/이기철
그대가 노벨 문학상을 받던 해
나는 한국의 경상도의 시골의 고등학생이었다.
안톤 슈낙을 좋아하던
갓 돋은 미나리 잎 같은 소년이었다.
알베르 까뮈, 그대의 이름은 한 줄의 시였고
그치지 않는 소나타의 음역(音域)이었다
그대 이름을 부르면 푸른 보리밭이 동풍에 일렁였고
흘러가는 냇물이 아침빛에 반짝였다
그것이 못 고치는 병이 되는 줄도 모르고
온 낮 온 밤을 그대의 행간에서 길 잃고 방황했다
의거가 일고 혁명이 와도
그대 이름은 혁명보다 위대했다
책이 즐거운 감옥이 되었고
그대의 방아쇠로 사람을 쏘고 싶었다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 열광과 환희는.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으련다
아직도 나는 반도의 남쪽 도시에서 시를 쓰며 살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백 사람도 안 읽는 시를 밤 세워 쓰고 있지만
이 병 이 환부 세월 가도 아주 낫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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