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 11. 10:00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적폐청산/박수소리

적폐청산 積弊淸算
딸에게 저녁 먹으며 슬쩍 물어봤다.
적폐청산에서 적폐가 뭔지 아니 했더니,
"적'자가 레드를 말하나?"한다.
씻어내야 할 나쁜 거라는 건 아는데, 그 말의
뜻은 잘 모른다.

와인 바에 오는 한 사장에게 물었더니,
적군할 때 '적'자라고 한다.
적과 아군의 이분법,
선과 악의 이분법에 따라
구분한다. 적폐는 악이고 물리쳐야 할 우리의 적이다.

사전을 찾는다.
적폐는 오랫동안 쌓여 뿌리박힌 폐단을 말한다.
'적'자는 쌓여 뿌리박혔다는 것이고,
'폐'는 낡아 해져버린 페단이다.
청산은 ' 깨끗이 씻어 버린다'는 말이다.
2018년 대한민국의 최고 화두이다.

'적'자는 레드 콤플렉스의 '붉음'도 아니고,
싸워 없애야 할 적군의 '주적'도 아니다.
단지 쌓여있을 '적'자이다.

이런 오해가 있으니, 나는
좀 어렵지만 격탁양청激濁揚淸
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한다.
맑은 물을 흐르게 하면, 흐린 물, 적폐는 흩어지지 않을까?
청산은 도려낸다는 말인데, 그 거 쉽지 않다. 단지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폐단을 도려내려 하지 말고,
폐단이 아닌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분투(Ubuntu)
네가 있어 내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말없이 가르쳐 준다.
봄에 새잎이 나오면 헌 잎은 자연히 사라진다.
좋은 게 나타나면 나쁜 건 자연히 물러난다.
햇빛이 비추면 어둠은 그냥 사라진다. 어둠을
따로 퍼낼 필요 없다.

이성복 시인이 하는 말이다.
TV보는 아이를 때리면 공부는 커녕, 공부에 대한
염증만 커진다.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려주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 나게 하면,
자연히 TV를 안 보게 된다.

작년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가 "파사현정"이다.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그릇된 것을 부수고 나면 그 상태가 바른 것이지,
달리 바른 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바른 것을 드러내면,
자연히 그릇된 것이 사라지므로, 새삼
그른 것을 부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게 시인이 생각하는 적폐청산에 대한 또 다른 방편이다.
새 물을 부으면 흐린 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하자는 말이다.

관계가 힘들 때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관계가 힘들 때 미움과 증오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이 그 말이다.

'위빠사나'에서는 "마음을 새로 내서, 앞의 마음을 뒤의 마음이 보게하라"고 했다.
그러니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재발이 안 된다.

그렇다면 적폐청산과 사회통합 중 무엇이 중요한가? 답은 간단하다.
오폐수는 먼저 정화조나 하수처리장을 거친 뒤에야 강물과 '통합'할 수 있다.
청산 없는 통합은 오염일 뿐이다.
시인의 입장은 분명하다.

다만 두 가지를 병행하면 어떨까?
먹물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