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떤 글을 보고 정리해 두었던 내용이 아직도. 아니 지금 더 유효한 슬픈 현실입니다.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한나 아렌트) 1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 무사유의 죄’라는 말을 했습니다. 요즈음 나의 뇌에서 떠나지 않는 화두이지요. 이 책의 요지는 이런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잡혀온 나치의 앞잡이 아이히만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 혹은 영혼 그자체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인 것입니다. 그는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 일어납니다. 그의 범죄 행위는 ‘철저한 무사유’라는 것이지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관료사회에서 주어진 규칙을 거의 어긴 일이 없는 평범한 인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근면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철저한 무사유’가 학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행위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반성하지도 성찰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유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의견에 따르면,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무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드시 ‘사유’해야만 했던 것을 전혀 ‘사유’하지 않았던 것이 아이히만의 죄였습니다. 맹자가 주장했던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꾸어 보는 행위)’하는 기본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최근의 우리사회에도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잠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좀 들여다보겠습니다. 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가? 첫 번째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바보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들을 만들어 내던 교육 시스템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지배하는 정보시대로 완전 탈바꿈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교육행정가들 때문입니다. 산업시대의 교육은 윗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노동자 교육 시스템일 뿐이었습니다. 이젠 경쟁의 논리를 통해, 기계와 같은 노예만을 키워서는 안 됩니다. 인간임을 자각시키는, 성취 위주가 아닌 행복을 추구하도록 하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큰 학문을 가르친다는 대학도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은 사라지고, 대학이 기술자 아니면 샐러리맨만 만드는 교습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의 대학이 아니지요. 인문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같은 것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사유케 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나라는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노예 바보’는 머리가 좋으면 다스리기 어려우니까.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만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이 문제라면 책이라도 읽으면 좋으련만. 일 년에 0.9권 읽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정부가 국민을 졸로 아는 행동을 하는데도 정부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는 사고로 변함없는 지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와 국가를 동일시하면서 말입니다. 인문학을 정규과정에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나오게 됩니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돈으로 계급을 나누는 인간들을 천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서 건전한 양식을 보편화시키고 상식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 교육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키우고 허영을 자극하는 교육일 뿐입니다.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고, 그 공동체적 삶의 기초를 강화하는데 필요한 도덕성과 가치의 토대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은 실패한 교육입니다. 거기서 실패한 사회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실패한 사회입니다. 품위, 아닌 인간의 품격 상실, 약자의 처지에 대한 동정과 공감 능력의 극단적인 위축,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흡수할 상상력의 궁핍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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