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결과 중심적’으로 ‘빨리, 빨리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라는 식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들의 식사 문화를 ‘과정 중심의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는 내 주장이다.
며칠 전부터 읽고 있는 쓰지 신이치의 『슬로 이즈 뷰티플』이야기를 오늘 아침 화두로 정했다. 그 이유는, TV를 잘 보지 않지만, 어제 저녁은 '음식 이야기'를 하는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본의 아니게 시청했다. 페스트 푸드를 대신 할 슬로 푸드 이야기는 단순히 음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문화이고 라이프 스타일이다. 특히 먹는 문화란 단순한 식도락의 차원이 아니다. 요리는 종합예술로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만일 먹는 문화가 있다면, 그 때 먹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세련된 문화의 일부분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그리고 먹는 문화의 시작은 음식문화를 즐기려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경험한 프랑스 인들은 ‘문화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프랑스인들의 독일인의 평가는 ‘문화가 없는 야만인’, 영국인의 평가는 ‘조잡한 문화를 가진 속물’, 미국인들의 평가는 ‘쌍놈에 졸 부자'이다. 이를 오만이라고 보기보다는 ‘문화와 가치'라는 잣대에 비추어 보아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면 문화 강대국의 프랑스를 이루는 것들은 무엇일까? 오랜 전통, 화려한 문화유산, 세련된 삶의 습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조적 전통에다, 미식문화, 먹는 즐거움에 애정을 갖는 식탁 문화를 반드시 끼워 넣어야 한다.
프랑스인들에게 있어서 먹는 요리는 특별한 것이다. 프랑스들은 요리에 대해 말하면 쉽게 표정이 밝아진다. 따라서 프랑스 인들과 쉽게 사귀려면 맛있는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함께 먹고 즐기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어디 프랑스뿐이겠는가?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먹는다.’는 것이다. 그저 생존 차원의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함께 즐기는 것이다. 단순히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친근함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맛있고, 보기 좋은 요리로 배를 채우다 보면 상호간에 여유가 생길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열려 있는 ‘틈’을 발견할 수 있어, 서로가 서로를 잘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야기는 또 기회를 잡아 해 볼 생각이다.
실제로 우리말에 ‘한솥밥 친구’라는 말이 있다. 이를 영어로 말하면 ‘Companion’이고, 프랑스어로 말하면 ‘Compagne’이다. 이 말들의 어원을 분석해 보면, ‘동무, 동반자’란 뜻이지만 ‘같이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들은 모두 다 ‘함께 먹는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먹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은 곧 삶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오늘 아침은 좀 슬픈 시를 공유한다. 오고 가다 길에서 자주 이런 광경을 만난다. 시인이 말하는 "즐거운 식사가 도열해 있는 화사한 편의점"에서 혼자 해결하는 식사 말이다. 그 모습은 편해 보이지만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삼 분을” 기다린 후 무표정하게 “퉁퉁불은 면발을 넘기며/하루 동안 견뎌야 할 중력을 가늠해” 가며, “우걱우걱” 먹고 있는 기능적인 식사 속에는 인간의 일차적 욕구인 식욕마저도 시간과 노동과 저임금에 저당 잡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는 먹을 것이 충분치 못해 ‘무엇을 먹을까?’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못 먹는 절대 빈곤으로부터 대부분 해방된 후, 이제는 ‘어떻게 먹을까?’를 사람들은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 즉 ‘먹는다’는 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결과 중심적’으로 ‘빨리, 빨리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라는 식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들의 식사 문화를 ‘과정 중심의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는 내 주장이다. "TV 먹방'도 그렇다.
식탁에서 중요한 것이 음식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음식 앞에서 이 음식의 유래는 어떻고, 어떻게 해서 맛이 나는지 등등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패스트 푸드가 아닌 슬로 푸드를 고민할 때이다. 특히 코로나-19가 우리를 충격 속에 몰아 넣은 이후의 세상에서는. 시 다음의 글로 그 사유를 더 이어간다.
즐거운 식사/조동범
그녀는 능숙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뜨거운 물을 붓고 창 밖에 시선을 던진 채 그녀는
건조한 평일 오전을 바라보고 있다
무표정하게 즐거운 식사를 기다리는 삼 분 동안 그녀는
서류뭉치처럼 단단하게 묶인 일상을 떠올린다
흘러내린 스타킹처럼 구름이 흘러가고
편의점에는 경쾌한 음악이 펼쳐진다
즐거운 식사가 도열해 있는 화사한 편의점
그녀는 건조한 평일 오전에 걸터앉아
즐거운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퉁퉁 불은 면발을 넘기며
하루 동안 견뎌야 할 중력을 가늠해 본다
한 컵의 뜨거움, 수증기를 만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린다
컵라면을 먹다 말고 그녀는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채소를 바라본다
이제는 말라, 제대로 썩는 법조차 잃어버린
건조한 평일 오전의 채소
그녀는 우걱우걱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무처럼 단단히 박혀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하고
우선,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1. 태양, 빛, 열과 같은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이것과 연관하여 에너지 문제, 오존층 파괴, 자외선 과다 노출 문 등이 함께 연상된다.
2. 공기와 숲이다. 대기 오염과 그로 인한 알레르기 문제 등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3.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사흘간 공급이 중단되면 그대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귀중한 물이다. 수질 오염, 불 부족 문제들로 생각이 이어졌다.
4. 먹거리를 생산해내고 있는 살아 있어야 할 흙이다. 토양 오염과 사막화 문제 등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단순히 우리는 태양, 공기, 물, 흙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생명 그 자체가 태양, 공기, 물, 흙의 화신이다. 즉 우리 자신이 바로 태양이고, 공기이고 물이고 흙이다. 이 일체성(일체성)을 매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먹거리를 통해서이다.
먹는다는 것은 땅의 생명력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채취한 음식물이다. 요즈음 TV를 보면 거의 다 먹는 방송이다. 특히 배**라는 광대같은 인물이 물을 흐린다. 왜 그럴까? 우리가 먹는 일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사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위기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땅과 관련성도 없이 저 혼자 떠돌고 있는 음식들, 단지 영양의 수치로 환원되어 기호로서 존재하고 있는 식품들, 가공되고 인공 첨가물까지 가미된 무의만 식품인 것들이다. 이것들은 생명을 담고 있는 진정한 먹거리가 아니다. 그러면서 먹는 일 지체도 동시에 위기에 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식습관 오염 역시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식생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염된 식품이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우리의 식생활이 오염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 제철 자연에서 길러진 생명 그 자체로의 먹거리 대신 인공적으로 재배된 것을 먹기 때문이다.
- 우리 땅에서 자란 농산물 대신 지역적으로 떨어진 외지에서 들어 온 수입 식품을 먹기 때문이다.
- 알맞은 양을 먹는 대신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물을 먹기 때문이다.
- 회식, 파티, 피로연 등 각종 모임 등에서 제공되는 행사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기 대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획일적인 식품을 먹기 때문이다.
- 자연에서 성장한 식품이 아니라, 재배되고 가공되고 유통 과정에 화학물질이 첨가된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 식물성 식품 중심에서 동물성 식품 중심으로 먹기 때문이다.
따라서 TV 먹방은 단순히 음식물과 요리법에 관한 새로운 제안에서 더 나아가 식생활 전체를 검토하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주장하는 사회 문화 운동도 함께 되었으면 하고 나는 바란다. 그 문화 운동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뿌리내린 생명체를 섭취하는 식생활을 부활 시키는 것이고, 공장에 의존하지 않는 식생활을 온전히 되살리는 것이다. 적당한 양의 곡물과 채소를 자연의 기후에서 재배하여 그것을 직접 요리해 먹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기도 하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조동범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은 투쟁이 아니고, 마음 가는 대로 살며 삶을 즐기는 거다. (0) | 2023.07.03 |
---|---|
외로움은 더 외로워야 밝아진다/신필상 (0) | 2023.07.03 |
사랑의 흔적/유하 (0) | 2023.07.03 |
늙는다는 것/김재진 (0) | 2023.07.03 |
우리가 집중하는 것이 확장된다. (0) | 2023.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