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학교가 가르치는 것이란다.
"오늘날 우정은 결점이 되었다. 학교에 가는 이유는 배우기 위해서가 아닌 이기기 위해서이다. (......) 요즘은 친구보다 경쟁자를 갖는 게 가장 좋다. 경쟁자들은 이기심을 조장하고 남을 신뢰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다니에 꼴네호, <번개-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롭고 번뜩이는 이야기>, pp, 156-157)
우리나라 교육은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백년하청이다. 중국의 황허 강이 늘 흐려 맑을 때가 없는 것처럼, 한국 교육의 미래가 계속 흐리다. 가장 큰 문제가 교육부의 교육관료들 때문이라는 지적이 매우 많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교육관료들에게 교육은 권력이고 기득권의 방벽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육의 이름으로 통제와 길들이기에만 몰두한다. 교육철학보다 교육공학에만 몰두한다. 이러다가는 다 망한다. 교육관료에게는 지금의 시스템이 꿀물이지만, 다음 세대는 끝물이고, 그 다음 세대는 사약이 된다.
이런 교육부의 철옹성을 바꿀 수는 있을까? 연대하여야만 바꿀 수 있다.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연대가 함께 머리띠 두르고 주먹 불끈 지르는 것만은 아니다. 생각을 공유하고 뜻을 함께하는 것이 연대이다.
현재 교육은 신분 고착의 굴레가 되었다. 그런데 교육은 변하지 않고 있다. 무의미한 무한경쟁만 난무한다.
20세기 교육은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에 호응하였다.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는 빠르고 정확한 계산의 능력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교육은 답을 빨리 습득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 능력으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21세기는 다르다. 물론 교육의 본질이 '과거의 사람이 과거의 방식으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가르치는' 숙명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도 20세기는 그런 교육이 통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속도와 효율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것이 안 통한다. 우리는 창의력, 상상력, 융합의 능력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가르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힘들겠지만 연대의 힘으로 하면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교육문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제목 아래 글들을 모아본다.
PS. 백년하청: 중국의 황허강이 늘 흐려 맑을 때가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오랜 시일이 지나도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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