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참 여러 가지 꽃들이 핀다. 그래서 ‘보다’라는 동사에서 ‘봄’이라는 명사가 태어난 것 같다.
제일 먼저 봄을 기다리는 꽃은 동백꽃, 성급해서 눈 속에서 핀다. 그 다음은 버들강아지-갯버들 꽃, 다음은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목련이 이어진다. 병아리가 생각나는 개나리가 거리를 장식하는 동안, 명자 나무 꽃, 산당화 그리고 진달래가 봄 산을 장식한다. 다음은 벚꽃(사꾸라)이 깊어가는 봄을 알린다. 그 사이에 마을마다 살구꽃, 배꽃, 복숭아꽃이 이어진다. 그 끝자락에 철쭉과 영산홍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이런 시도 있다.
순서/안도현
맨 처음 마당 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는
뒷집 우물가
앵두나무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 밭
사과나무가
따복따복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사과 밭 울타리
탱자 꽃이
나도 질세라, 핀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병들어 꽃이 피는 순서가 무너졌다. 선(善)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악(惡)이 이 세상을 끌고 가는 세상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엉터리’ 학교이다. 선을 행했는데, 칭찬을 받지 못하고, 악을 행해야 대접을 받는 사회-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꽃이 ‘폭죽처럼’ 한 번에 만발하며, 한 번에 지는 길을 걸으면서 들은 생각이다.
그래도 꽃들은 피었다가 가야 할 때를 알고 떠났다.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이 제 각각이다. 그런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삶과 죽음을 볼 수 있다. 꽃은 피었으면 진다. 순리이다. 낙화가 없으면 녹음도 없고, 녹음이 없으면 열매도, 씨도, 그리하여 그 이듬해의 꽃도 없다. 그러니 우리도. 너무 현재를 붙잡으려 하며 추해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때가 되면 결별할 줄 알아야 한다.
꽃들은 저 마나 피어나고 지는 모습이 다르다. 우리 인간들도 저마다 살다가는 길이 제 각각인 것처럼.
동백은 한 송이 개별 자로서 피었다가, 주접스런 꼴 보이지 많고 절정의 순간에 뚝 떨어지며 진다.
매화꽃, 벚꽃, 복사꽃, 배꽃은 풍장을 한다. 꽃잎 한 개 한 개가 바람에 흩날리다 땅에 떨어져 죽는다.
산수유는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었다가 노을이 스러지듯 살짝 종적을 감춘다. 나무가 숨기고 있던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 같다고 김훈은 묘사한 적이 있다. 나도 내 삶을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부분이 있다. 산수유처럼.
그리고 길게 이야기 하고 싶은 꽃이 목련이다. 목련은 도도하게 피었다가 질 때는 지저분하다. 목이 부러질 듯이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 올리며 뽐내다가 질 때는 남루하다.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한꺼번에 뚝 떨어지지 않고 잎 조각들로 느리게 사라진다. 온갖 추한 모습을 보이며.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복효근)는 것인가?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꽃과 만나고 이별하면서, 행복한 봄의 한철이 되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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