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4월 12일)
촬영 현장에 가면, 감독이 ‘레디'와 ‘액션’을 외친다. 몹시 슬픈 장면인데도 촬영 전 배우는 웃으며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배우에게 ‘레디’는 촬영하기 전 짧게 준비하는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한 배우가 그 장면을 위해 일생을 연습하고 준비해온 기간이다.
백영옥 소설가의 글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매주 월요일은 이야기의 힘을 공유하는 날이다. 가급적 많은 이야기를 소환하려 한다. “‘옛날 중국에 추앙추라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어느 날 황제가 그에게 ‘게’ 하나를 그려 달라고 했다. 추앙추는 열두 명의 시종과 집 한 채, 그리고 5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5년이 흘렀으나 그는 아직 그림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추앙추는 5년을 더 달라고 했고 황제는 이를 수락했다. 10년이 지날 무렵 추앙추는 붓을 들어 먹물에 찍더니 한순간에, 단 하나의 선으로, 이제까지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완벽한 게를 그렸다.’”
이 이야기는 느림을 칭찬한 것일까? 아니면, 속도를 칭찬한 것일까? 어쨌든 빠름은 종종 느림을 전제로 한다. 1만 시간 이상의 연습을 통해 5분 만에 곡을 쓰고, 30분 만에 코딩을 끝낸 작곡가와 프로그래머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결과를 보기에 과정의 지난함을 잊는다. 임스체어로 유명한 임스는 “의자 디자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오른 겁니까”라는 질문에 “그건 한 30년 동안 떠오른 거예요”라고 답한다.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워 숙련된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련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오늘 하루를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일생이 걸린다. 위대한 삶을 지향하는 자는 시간을 장악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더 나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집중한다. 오늘 아침에 고유하는 시는 1995년 생으로 2021년 신문문예에 당선된 것이다.
단순하지 않은 마음/강우근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해수면 위로 몸을 뒤집는 돌고래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버스에서 승객들은 함께 손잡이를 잡으면서 덜컹거리고,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는 차장에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편의점에서 검은 봉투를 쥔 손님들이 줄지어 나오지.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없는,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생겨나는. 어느새 나는 10년 후에 상상한 하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쥐었다가 펴는 손에 빛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답은 언제나 간단한 법이다. 복잡한 생각을 걷어내야 비로소 길이 보인다. 하수는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만들지만, 고수는 복잡한 것도 단순하게 푼다. 고수가 되고 싶다면 생각의 군살을 베어내라"는 글을 한 단체 카톡에서 읽었다.
생각을 도려내는 칼이 있다. 이 칼은 잡초처럼 무성한 생각들을 쳐내어 실체를 또렷이 드러나게 해준다. '사고(思考) 절약의 원리' 라고도 불리는 <오컴의 면도날 Occam's razor >이 바로 그것이다. 중세 영국의 신학자인 윌리엄 오컴이 제시한 이 논리는, 어떤 일을 설명할 때 복잡한 것 보다는 간단한 것이 정답에 가깝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의 현상에 두 개의 설명이 있다면, 긴 것보다는 짧은 것이 정답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생각이 깊을수록 말은 단순해 진다고 한다. 높고 깊은 경지에 이른 고수들의 말은 쉽고 간결하다. 복잡한 생각들을 걷어내고 단순하게 현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현상은 복잡해도 법칙은 단순하다. 선택은 포기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버려라, 그러면 이긴다." 생각이 복잡하면 인생 길도 복잡하다. 쳐내면 쉽고, 버리면 가볍다!
<장자>의 제4편 "인간세" 2절에서 만난 문장이다.
夫道不欲雜(부도불욕잡) 雜則多(잡즉다) 무릇 도는 잡되지 않아야 한다. 잡되면 용무가 많아지고,
多則擾(다즉요) 擾則憂(요즉우) 용무가 많아지면 어지러워지며, 어지러워지면 근심이 생기고,
憂而不救(우이불구) 근심이 생기면 남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잡다하지 않은 "단순은 궁극의 정교함"(배철현)이다. 아인슈타인은 "무언가를 간단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당신을 그것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단순함이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그 단순은 오랜 수련을 거쳐 도달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거의 완벽한 상태이다. 그러니까 단순은 모자란 것이 아니다. 서툰 것도 아니다. 무용수들의 춤을 보면,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확장하는 고된 훈련을 통해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든다. 그들의 움직임의 가장 큰 특징이 단순이다. 이들은 군더더기(장자는 '익다(益多)'라고 표현) 없는 최소한 움직임으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동작을 만들어 낸다. 나는 아르떼(ARTE)라는 방송으로 가끔 세계 최고 무용 공연을 넋 놓고 볼 때가 있다.
위에서 말했던 윌리엄 오컴에 의하면, 어떤 명제가 진리인지 거짓인지를 판가름하는 추론의 기준은 불필요한 가정의 제거라 보며, "필요 없이 복잡하게 만들지 마십시오'라 말했다. 이 문장 더 풀이 하면, 문제의 핵심을 모르는 사람은 복잡하게 설명한다. 쓸데 없는 말들로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한다.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피하라는 말이다. 인생이란 삶을 위한 최적의 상태인 단순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도 단순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적용해온 과정이다. 인간에게 문명을 가져다 준 두 가지 요소를 배철현 선생은 도시와 문자로 삼는다. 도시는 사적인 이해가 상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와 양보를 통해 공동체 적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추상적인 공간이다. 문자는 이 추상적인 공간을 유기적으로 엮어주는 거룩한 끈이다. 그런데 고대 사람들은 문자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했는데,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알파벳을 완성했다.
호메로스의 천재성은 자신들에게 절실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창조적으로 변용했다. 영어를 포함한 오늘날의 대부분의 유럽 문자들은 페니키아 알파벳을 수정한 그리스 알파벳의 후손이다. 알파벳은 26개의 문자로 인간의 거의 모든 생각을 표현 수 있는 단순함의 극치이다. 혁명이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이름을 바꾸는 용감한 행위이다. 혁명의 핵심은 꼭 필요한 몇 개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제거하는 단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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