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와인의 상큼한 맛을 내주는 원천이다. 특히 화이트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하고 상큼한 맛은 산의 작용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은 레드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산은 온도가 낮아야 특유의 새콤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맛이 잘 느껴진다. 따라서 화이트와인을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이다. 와인을 차게 하면 향의 발산은 억제된다. 따라서 고급 화이트 와인의 경우 복합적이면서도 섬세한 향을 즐기는 사람들은 레드 와인처럼 실내 온도인 섭씨 16°C~18°C로 해서 마신다.
산이 와인 속에서 하는 역할은 다양하다. 우선 산은 와인의 신선도를 유지시켜 보존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유해한 박테리아로부터의 공격을 막아주는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 두 번째로 산은 와인의 색깔과 향이 형성되는데 영향을 미치며 와인을 목에 넘겼을 때 느껴지는 뒷맛을 좋게 한다. 세 번째로 산은 당을 덜 느끼게 하고 탄닌을 뚜렷하게 해주는 등 와인의 맛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달콤하고 탄닌 함유량이 적은 와인의 경우에 산을 더욱 더 필요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와인 속에 산이 과다하면, 맛이 시큼해 지며 부께(bouquet, 와인의 2차 향)도 약해진다. 또한 산이 적으면 와인의 맛이 밋밋해진다. 그리고 당은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산이 결여되어 있으면 상큼한 맛을 기대할 수 없고 그야말로 설탕물 같은 와인이 된다.
와인 속에서는 어떤 산들이 들어 있을까? 와인에는 포도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주석산이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다. 서늘한 온도에서 와인을 장기간 저장할 경우 주석산은 병 속에서 용해되지 않는 하얀 결정체로 변해 침전된다. 이런 결정체는 오래 숙성 시켜 마시는 고급 와인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인체에는 해가 없다. 그 다음으로 사과산이나 구연산 등은 알코올 발효에 이어 일어나는 젖산발효에 의해 부드러운 젖산으로 바뀌거나 없어진다. 그 다음으로 와인의 향을 좋게 하는 호박산은 발효과정에서 미량 형성된다. 그리고 산 중 유일하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휘발성의 아세틱 산(초산)이 통상 와인 1l당 0,4-0,6g 정도 존재한다. 아세틱 산이 적정량을 초과할 경우 식초냄새가 난다.
와인의 맛을 표현하려면, 우리는 흔히 위에서 살펴 본 균형과 조화 이 외에, 당도, 떫은 정도, 무게감, 뒷맛(finish)이라는 분야로 나누어 표현한다. 당도 표현은 드라이(dry)와 스위트(sweet)로 나누어진다. 와인의 경우에 드라이라는 말은 ‘건조하다, 말랐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달지 않다’는 의미이다. 드라이한 와인은 스위트한 와인을 마셨을 때 입안에 남는 끈적임 같은 것이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와인이 드라이한 와인들이다.
반면 입안에 달콤한 맛이 남는 와인을 '스위트 하다'고 한다. 이런 와인들은 꿀물처럼 달콤한 맛이 난다. 프랑스의 소떼른느, 독일의 아이스바인과 트로겐베렌아우스레제, 헝가리의 토카이, 포르투갈의 포트 등이 대표적인 스위트 와인이다. 와인의 단 맛은 잔당(Residual Sugar, 약자로 RS라고 함)에 의해 느껴진다. 포도를 으깬 포도즙에 들어 있는 당분이 발효과정에서 효모에 의해 알코올로 변할 때 당분이 완전 발효되지 않고 남는 것을 잔당이라고 한다. 당분 이외 단맛을 주는 성분은 알코올, 글리세롤 등이 있다. 이 밖에 와인을 마시는 온도나 탄산가스 함유량도 단맛에 영향을 준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구세계 와인은 드라이하고 미국이나 호주 등 신세계 와인들은 덜 드라이하다. 레드 와인의 경우 대부분이 드라이하고, 특히 색깔이 짙을수록 드라이한 경향이 있으며 화이트와인의 경우는 그 반대로 색깔이 엷을수록 드라이한 경향을 띤다.
와인의 떫은맛은 탄닌 때문이다. 이 탄닌은 땡감을 먹었을 때나 홍차를 마셨을 때 입 안쪽을 조이며 침을 건조 시키는(말리는) 역할을 한다. 위에서 이미 말했던 것처럼 탄닌은 포도송이나 포도 줄기, 씨나 껍질 그리고 와인을 숙성 시키기 위해 넣는 오크 통에서 나온다. 이 탄닌은 화이트와인에서 신맛의 역할인 레드 와인의 골격을 형성하며 오랜 숙성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방부제 역할도 한다. 탄닌이 많은 포도품종으로는 까베르네 쏘비뇽, 시라(쉬라즈) 등이다. 그러나 거친 탄닌은 숙성을 통해 거친 맛이 줄어들고 부드러워진다, 이 때 떫은맛의 표현은 이런 식으로 한다. 탄닌이 부드러워진 와인을 마실 때면, “탄닌이 잘 녹았다, 맛이 부드럽다, 유연하다, 균형이 잘 잡혔다”로 표현한다. 반면 아직도 맛이 거칠고 텁텁하다면, “조인다, 거칠다, 쓰다” 등으로 표현한다.
와인의 무게감은 바디(bod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와인을 마시다 보면, 와인의 맛이 가볍고 경쾌한 와인이 있는가 하면 묵직하고 입 안에 꽉 찬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이 같은 차이는 와인의 바디(몸)가 가벼운가 또는 무거운가에 따라 나타난다. 와인의 경우, 바디(몸)란 입 안에서 느껴지는 와인의 무게를 뜻하는 용어로 와인의 스타일을 결정해주는 요소이다. 이런 무게감은 알코올과 탄닌, 당분 등이 그 느낌에 관여한다.
일반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고 스위트한 와인일수록 풀 바디한 스타일이다. 이것은 마치 물이나 우유를 마실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다른 것과 같다. 물은 입 안에서 가볍게 느껴지는 반면, 우유는 묵직한 느낌을 준다. 와인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바디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와인의 몸무게로 흔히 라이트 바디(light-body: 가볍고 경쾌한 맛), 미디엄 바디(medium-body), 풀 바디(full-body: 진한 맛)라고 표현한다. 라이트하다는 것은 보졸레 누보처럼 가벼운 맛을 말한다. 화이트와인으로는 독일의 모젤-자르-루베르 강과 라인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가볍고 경쾌한 스타일이다. 그 외 대부분의 화이트와인은 미디엄 바디에 해당한다.
반면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메독이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와 같은 와인을 마실 때는 “풀 바디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입안에 꽉 차는 듯한 풍만한 맛과 느낌을 뜻한다. 입 안에서 와인의 맛을 느끼는 혀가 저울이라고 생각하고 마신 와인이 얼마나 무게가 나가는지를 음미해보면 와인의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스타일을 파악하면, 음식과 함께할 와인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바디는 음식에 맞는 와인을 선택하는데 가장 일반적인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바디가 가벼운 와인은 간단하고 담백한 식사와 함께하면 좋고, 무거운 와인은 짙은 소스의 스테이크 요리, 강한 치즈 등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풀 바디한 와인이 라이트한 와인보다 좋은 와인일까라고 질문을 하면 물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와인은 무게감뿐만 아니라 맛의 균형이나 개성 그리고 여운(finish) 등 이런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와인을 맛 볼 때 첫맛과 중간 맛 그리고 와인을 삼키고 난 후의 맛의 여운을 느껴본다. 우리는 와인의 첫맛을 흔히 ‘어태크(attack)’라고 하고, 중간 맛을 그냥 ‘미들(middle)’ 그리고 맛의 여운을 ‘피니쉬(finish)’라고 부른다. 이 피니쉬가 오래가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다. 맛을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이 목에 넘겼을 때 감지되는 것이 뒷맛(영어로 피니쉬, finish)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와인을 목에 넘긴 후 입안에 남는 맛을 말하는 것이다. 소리의 경우로 말한다면, 여운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다. 와인을 입안에 삼키면, 실제로는 맛과 향이 어우러진다. 맛과 향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상호 영향을 주며 복합적으로 감지된다. 와인을 삼킨 후 향과 맛이 어우러진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주면서 지속되는 시간이 길수록 뒷맛이 좋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오랜 숙성으로 향이 복합적이고 맛이 부드럽게 발전한 와인이 이에 해당된다. 품질이 낮은 와인은 마신 후 풍미가 바로 사라진다. 뒷맛은 일반적으로 와인을 목에 넘길 때 느껴지는 자극과 후비 관을 통해 느끼는 향과 맛이 지속되는 정도 등으로 평가한다.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내쉬면 후비 관을 통해 느껴지는 와인의 뒷맛을 잘 느낄 수 있다. 와인이 지속되는 시간을 ‘지속성(length)’이라고 하는데, 와인의 품질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끝으로 와인의 맛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을 예로 몇 가지 제시해 보겠다.
• 탄닌 맛이 너무 많이 느껴질 때: 간단하게 ‘떫다’라고 하면 되고, ‘하드한 느낌’이라고 해도 된다.
• 좀 더 숙성 시켜야 할 단계의 와인이라면 ‘거칠다’라는 표현을 쓴다.
• 숙성이 진행되지 않아 신맛이 있는 경우에는 ‘젊은 와인’, ‘미숙한 와인’, ‘덜 익은 와인’ 등으로 표현한다.
• 신맛이 있더라도 기분 좋은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라면 ‘개운한 와인’, ‘발랄한 와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섬세한 고급 화이트와인이나 샴페인은 ‘레이스와 같은 와인'이라고 표현한다.
• 무거운 와인은 ‘뼈대가 튼튼하다’, ‘두툼하다’, ‘힘이 있다’, ‘맛이 깊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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