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치외교학과의 김영민 교수의 의하면, 우리가 태어나서 맨 처음을 성장을 느끼는 것은 "주변과 자신과의 비율의 변화"이다. 어릴 때, 가로수는 아주 커 보였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가로수는 점점 작아 보이고 가로수 너머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확장된 시야 속에서, 한때는 커 보였던 고향 마을도 점점 작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마침내 저 멀리 새로운 세계가 눈에 들어오고 나면, 우리는 떠나게 된다.
이렇듯 성장은, 익숙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작아져 버린 세계를 떠나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익숙한 곳을 떠났기에, 낯선 것들과 마주치게 되고, 그 모든 낯선 것들은 우리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들이 또 우리를 다시 성장하게 한다. 그 성장을 통해, 우리는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이제 세상 이치를 알 만하다고 느낄 무렵, 주변 사람들의 죽음 소식을 듣는다. 무관심할 수 없는 어떤 이의 부고를 듣는다. 이 부고 역시 우리의 시야를 확장 시킨다. 이제 삶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알 것만 같았던 삶과 세계를 갑자기 불가사의한 것으로 만든다. 그 누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낱낱이 알겠는가. 이 세계는 결코 전체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어떤 불가해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 우리의 삶이란 불가해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위태로운 선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 이 모든 것이 성장의 일이다.
그러나 성장은 무시무시하게 확장된 시야와 더불어 심미적 거리라는 선물도 함께 준다. 미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깎아지른 벼랑도 그 바로 앞에 서 있을 때나 무섭지, 멀리서 바라보면 오히려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거리를 둔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이라는 말을 위에서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시야의 확대가 따르지 않는 성장은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이제 김영민 교수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확대된 시야 없이는 상처를 심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동시에, 아무리 심미적 거리를 유지해도, 상처가 없으면 향유할 대상 자체가 없다. 상처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 용기가 없어 망설이다가 끝낸 인생에 불과하다. 태어난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고, 성장 과정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제대로 된 성장은 보다 넓은 시야와 거리를 선물하기에, 우리는 상처를 입어도 그 상처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카톡에서 잘 모르는 사람이 보내준 글을 읽었다. 이런 내용이다. 『다 쓰고 죽어라』라는 책의 저자 스테판 폴란은 "최고의 자산 운영이란 자기 재산에 대한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서 트로피처럼 모셔 두지 않고 행복을 위하는 일에 쓸 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이 4 가지를 제시하였다.
- 오늘 당장 그만 두라(quit today). 똑같은 일을 죽을 때까지 하지 마라는 말이다.
- 현금으로 지불하라(pay cash) 카드를 사용하면 과소비 하게 되기 때문이다.
- 은퇴하지 마라(Don't retire): 은퇴하면 건강도 나빠지고 정신도 녹슨다. 계속 새로운 일을 찾으라는 말이다.
-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 후회 없이 살라는 말이다. 다 쓰고 간다는 것이 재산 만이 아니다. 몸도, 마음 그리고 정신도 다 쓰고 죽는다는 말이다. 모셔 두고 자랑하려고 가꾸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건강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삶에 경험이 되는 것으로 바꾸고 쓰기 위해서 모으는 것이다. 모으지 않고 다 쓴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다 쓰면서 그 만큼의 경험을 사게 될 것이다. 상처의 경험이 많아야 삶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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